크리스마스 시즌이다. 대형빌딩은 물론 가로수와 교회 등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걸리며 오색 불빛을 흘리고 있다. 전력난에 대한 우려로 예년보다는 조용해진 느낌이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다. 지난해 ‘눈꽃 조명’으로 꾸며진 광화문 가로수길이 올해는 어떻게 꾸며질지 궁금해진다.
얼마 전 프랑스를 들를 일이 있었다. 프랑스를 거쳐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건강보험제도를 살펴보는 일정이었다. 초겨울 프랑스는 처음이라는 핑계로 현지 가이드와 함께 파리의 밤거리를 한 바퀴 돌아봤다. 파리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물들고 있었다.
그중 단연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샹젤리제 거리 가로수를 꾸민 크리스마스 장식. 나무 주위를 둥그렇게 둘러싼 LED 조명이 때때로 색깔을 바꾸면서 이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꼭 대형 훌라후프가 가로수를 둘러싼 모습이었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샹젤리제 거리는 우리나라처럼 가로수에 휘황찬란한 조명을 걸친 모습이었지만, 밝은 불빛과 전기선으로 나무가 괴로워한다는 한 시민의 지적에 따라 지금과 같이 훌라후프 장식을 했다는 설명이다. 파리 시내를 둘러보는 동안 현지 가이드는 남유럽 못지않게 복지병을 앓고 있는 프랑스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프랑스가 G20 국가 가운데 하나일 뿐, 더 이상 선진국처럼 느껴지지 않는다”고 10년 현지생활을 요약했다.
많은 부분에서 공감했지만, 적어도 크리스마스 장식에서는 우리나라보다 한발 앞선 느낌이었다. 우리도 크리스마스 장식은 화려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전력을 아끼고 환경을 고려하는 방식으로 생각을 전환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다음 날 도착한 벨기에. EU대표부가 위치한 이곳은 단일 건강보험체제인 우리나라와 달리 다보험이 경쟁하는 구도로 3~4% 선의 건강보험료 증가율을 통제하고 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료가 매년 12% 정도 증가하고 수조원의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을 감안할 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사례였다. 우리나라 건강보험공단과 유사한 성격의 이나미(INAMI)에서 여러 명의 실무자를 인터뷰한 결과, 이곳의 경쟁력은 보험자 사이의 경쟁 구도가 아닌 의료 공급자와 소비자에 대한 섬세한 모니터링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나미에서 재정을 담당하고 있는 미셀 비그널 국장은 “한국에 휴대폰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건강에 해로운 휴대폰 전자파를 감안할 때 목적세를 부과하는 것도 건강보험 재정을 확충하는 방법이 될 것”이라는 제안을 내놓았다. 미처 생각지 못한 구체적이고 섬세한 지적이 예리하게 마음속을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유럽이 재정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우리가 배울 점은 여전히 많아 보였다. 특히 우리나라 병원에 어느 정도의 의료기기가 도입돼 있는지도 정확하게 모르고 급여를 지급하고 있고, 의인성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iCJD)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는 리요두라(Lyodura)의 수입이 어느 정도 이뤄졌는지 파악조차 못하는 실태를 감안할 때 유럽의 섬세함은 부럽기만 했다.
얼마 전 중국 푸둥공항 출입국심사대에서 고객 만족도를 표시하는 버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가 중국보다 앞섰다고 자부한 디테일(Detail)에서도 중국의 추격은 이미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