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세계적 자랑인 포스코를 허허벌판에 세운 청암 박태준 회장이 별세했다. 약간은 어눌한, 그러면서 카랑카랑한 말로 주변 사람들을 제압하던 그의 또랑또랑한 모습을 더는 볼 수 없게 됐다. 이제 그와 비슷한 인물을 어디서 볼 수 있을지 요즘 돌아가는 한국 현실이 아득하다.
확실히 그는 한국의 자랑이었다. 자화자찬이 아니라 실적이 이를 증명한다. 포스코는 올해 전 세계 34개 철강 대기업 가운데 수익성ㆍ기술성 등 23개 항목에서 단연 1위를 차지했다. 68년에 착공한 포항제철은 1기 고로가 73년 첫 쇳물을 뽑아낸 뒤 줄곧 위만 보고 걸어왔다. 값싼 철강 원재료를 생산, 자동차와 조선, 전자산업의 초석을 다졌고 무역수지와 재정자립에 기여했다. 그렇다고 사원들을 다그친 것만은 아니다. 사원복지 개선에 누구보다 공을 들인 것이다.
지금도 포스코 포항공장, 광양공장에 가보면 공원이 따로 없다. 공장인지 공원인지 구분 안 가게 말끔한 일터에서 사원들의 잦은 목욕까지 권장하는 목욕론은 깨끗한 신체와 마음가짐으로 부패와의 단절을 시도하는 암묵적 계약이나 다름없다. 사원주택, 학교시설 등을 벤치마킹하는 대기업들의 사업장이 날로 깨끗해지고 신설 공장들의 관리가 어찌 해야 할지 좌표를 제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배후에는 고 박정희 대통령의 지극한 신임이 뒷받침했다.
이 때문에 정치권의 외압을 단칼에 배제했고 박 회장은 안정적 기업경영의 초석을 다졌다. 군화와 철모로 무장한 산업전사들의 군대식 경영이 한때 군사문화 잔재로 비판받기도 했으나 이를 통해 일사불란한 벨트식이 가능했던 것은 박 회장의 강단 있는 소신이 없으면 불가능했다. 오죽하면 중국 근대화의 아버지 등소평이 “박태준을 수입하면 안 되겠나” 하는 탄식을 했을까. 등소평의 그런 평가가 오늘날 제2 경제대국 중국을 건설한 것은 아이러니다.
그러나 말년 정치권 나들이는 아쉬운 대목이다. 자의 반 타의 반이라고 해도 81년 전두환 군사정권과 보다 과감한 딜을 했으면 안 가도 되었을지 모른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그 이후 박 회장은 집권당 대표, 대선후보 경합, 국무총리까지 지내는 동안 파란만장했다. 포스코에도 파벌이 생기는 등 한동안 갈등을 겪었다. 그럼에도 그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 산업화와 민주화의 디딤돌이라는 긍정적 평가는 받고도 넘치는 게 분명하다. 삼가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