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부 상원의원들이 끼워넣기 예산을 짜다가 동료의원에게 고발당했다. 서로 감싸고 도는 한국 국회와 아주 대조되는 모습이다. 민주당 소속 클레어 매캐스킬 상원의원(미주리)은 미 하원 군사위원회의 2012 회계연도 새해 국방예산 심의과정을 6개월간 은밀히 분석, 지역구 끼워넣기 예산을 적발하고 이를 워싱턴포스트 지를 통해 대대적으로 공개했다. 치밀한 조사와 용기 없이는 불가능한 정치적 결단이다.
이 보고서는 우선 하원 군사위원장이 각 의원들에게 수정안 제출 기회를 제공하는 식으로 편법의 길을 트자 여야 막론하고 선심성 지역예산을 끼워넣었다고 발표했다. 문제의 의원들은 민주당 24명, 공화당 18명으로 무려 8억4000만달러(약 9600억원)나 된다. 특히 선심성 예산을 뜻하는 ‘이어마크(earmark)’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된 공화당 초선의원 13명도 포함됐다니 양심 없기는 한국과 비슷한 꼴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용감한 고발자가 있다. 그것도 작심하고 오랜 시간을 조사 분석해 자기 책임하에 아예 유력 언론을 통해 공표해버린 게 남다르다.
반면 우리 여당은 쇄신에, 야당은 통합에 발이 묶여 본업엔 뒷전이다. 정기국회 내 예산안 처리 합의는 식언한 지 오래고, 새해 예산안 심의와 민생법안 처리를 위해 열기로 한 임시국회마저 민주당 내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세력의 강력 저지로 무산됐다. 이런 가운데 15개 상임위는 최근 내년 총선, 대선을 의식한 선심성 예산 11조원을 끼워넣을 때는 한통속이었다. 정태근, 김성식 한나라당 의원이 13일 탈당 선언을 했지만 국회 쇄신의 작은 초석이라도 놓으려면 차라리 이런 끼워넣기 예산을 요구한 의원 명단을 공개했어야 한다.
정치 선진국이라는 명함이 그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국회 내 질서를 지키고 국민 세금, 그러니까 예산 편성과 집행을 알뜰히 하게 하는 정치, 국회가 운영될 때 비로소 얻어진다. 거창한 당 쇄신, 재창당도 좋지만 끼워넣기 예산을 못하게 감시하고 고발하는 것부터가 정치 선진국으로 가는 길 아닌가. 예산계수조정소위 밀실 작업장 주변에 민원성 ‘쪽지’가 난무하는 현실부터 고발자가 나와야 한다. 예산은 나라살림이라는 중차대한 문제다. 예산 개혁 기치를 든 용기 있는 정치인만 있어도 희망의 끈은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