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 최남단까지 달려와
달랑 엑스포 구경만(?)
면세점은 효과적 유인책
기재부 유연한 판단 기대
1893년 이른 봄, 고종은 이조참의와 참의내무부사를 지낸 정경원(鄭敬源)에게 만국박람회 출품사무대원(出品事務大員)이라는 생소한 직책을 내렸다. 조선 역사상 처음으로 참가하는 미국 시카고 세계박람회 준비와 현장 책임을 맡긴 것이다.
그해 5월 1일 박람회가 시작됐고, 조선은 모시 등 옷감과 발ㆍ자리ㆍ자개장ㆍ자수ㆍ병풍 등을 전시했다. 비록 품질은 낮고 상품성은 떨어졌지만 어차피 참가에 의의를 둔 만큼 개의할 것은 없었다. 오히려 처음 보는 동방의 문물에 서구인들은 많은 호기심과 관심을 보여 “미처 응대할 겨를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그 정도면 조선의 첫 국제박람회 나들이는 성공한 셈이다. 정경원이 귀국 후 남긴 박람기(博覽記)와 박람회약기(博覽會略記)에서 전하는 내용이다.
그로부터 꼭 100년이 지난 1993년 한국은 사상 처음으로 국제박람회 공식 개최국이 됐다. ‘새로운 도약’을 주제로 열린 대전엑스포가 그것이다. 대전엑스포는 정보기술(IT) 강국 한국의 이미지를 세계 속에 심으며 선진국 진입의 초석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정경원의 시카고 박람회 이후 영욕의 한 세기를 보낸 한국의 위상은 이렇게 달라졌다.
그러나 이 역시 서막일 뿐이다. 2012 여수세계박람회를 통해 세계는 더 새롭고 강한 대한민국의 진면목을 보게 될 것이다. 특히 여수엑스포는 21세기 해양 선진국의 입지를 다지는 좋은 기회이며 지역 균형발전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성공 장담은 아직 이르다. 당장 내년 5월 막이 오르는데도 국민적 관심사는 여전히 낮아 보인다. 해외 관광객을 유인할 만한 묘책도 눈에 띄지 않는다. 이러다가 참가국과 일부 관계자들만의 잔치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일반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할 유인책이 절실하다.
전남 여수는 수려한 경관과 맑고 깨끗한 수질이 일품으로 해양을 주제로 한 엑스포를 열기에는 제격이다. 그러나 국토의 최남단에 위치, 서울 등 주요 거점도시와의 거리가 너무 멀다.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성공의 핵심 관건이다.
그런 점에서 엑스포 행사장 내 면세점 개설 아이디어는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매우 효과적이다. 특히 한국 방문 붐을 이루는 중국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데는 이만큼 효과적인 대안은 없다. 먼 길을 달려와 달랑 엑스포 구경만 하고 가기에는 뭔가 부족하고 허전하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이를 면세점 쇼핑을 통해 어느 정도 보상해주자는 것이다.
물론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머리를 맞대면 얼마든지 최소화할 수 있다고 본다. 여수박람회에 면세점을 허용하면 이후 각종 국제행사에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만 해도 그렇다. 올림픽과 월드컵 등은 그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엑스포는 100일 가까이 열리는 초대형 행사이나 올림픽 등은 길어야 한 달 이내이며 여러 지역에 분산 개최돼 면세점 운영이 불가능하다.
또 인근지역 소상공인들의 피해 가능성에 대한 지적도 큰 문제는 없을 듯하다. 지역 특산품이나 기념품은 면세점 판매 품목에서 제외하거나 아예 우수 업체를 입점시키면 된다. 관람객이 늘어나면 지역 경제에 더 도움이 돼 지역 소상인들은 면세점 설치를 오히려 바라고 있다. 실제 여수상공회의소가 박람회장 내 면세점 설치로 인한 지역 중소상인의 피해는 지극히 제한적이란 의견을 내놓은 것은 그런 맥락이다.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가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접근하면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다. 국회도 관련 법 개정에 호의적이다. 행정부와 국회, 조직위가 긍정적 결과를 도출, 성공 엑스포의 근간을 마련하기 바란다. 시간이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