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따끈따끈한 현황을 알려주는 결과가 공개됐다. 미술시장 월간지 중 가장 많은 판매부수를 자랑하는 미국의 ‘아트+옥션(Art+Auction)’지가 12월호에서 특집으로 발표한 ‘2011년 미술계 파워인물100’을 보면 작금의 미술계 강자의 면면을 확인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톱100’에는 억만장자와 패트런(후원자), 큐레이터와 디자이너, 유통전문가가 골고루 포진됐다. 이는 화랑-컬렉터(부호)-미술관-기획자-경매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굴러가는 미술계 시스템에서 기인한다.
월간 ‘아트+옥션’은 매년 각국 미술전문가들의 집계와 분석을 바탕으로 ▷컬렉터(수집가) ▷옥셔니어 ▷아트딜러 ▷패트런(후원자) ▷큐레이터 ▷디자이너 ▷플레이어 등 10개 부문에서 100명의 파워인물을 선정, 발표함으로써 미술계 1년을 결산하고, 최신 동향을 폭넓게 파악토록 해왔다. 그 결과 올해에는 아시아 컬렉터 및 전문가들의 약진이 눈에 띈다. 톱100에 중국계 부호 및 후원자, 큐레이터, 디자이너가 무려 9명이나 이름을 올린 것.
즉 중국 고미술 및 근현대미술에 능통한 3명의 경매전문가가 ‘옥션파워’에 선정됐고, 중국계 부호인 부디 텍(중국명 위더야오)과 중국 금융재벌 류이첸(Liu Yiqian&Wang Wei)부부가 ‘파워컬렉터’에 선정됐다. 또 디자이너 마 양송과 큐레이터 루 펭, 반체제 미술가 아이 웨이웨이가 각각 디자인파워, 파워큐레이터, 파워플레이어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중국계 슈퍼리치들은 중국 근현대 미술품값을 치솟게하는 것은 물론이고, 서양 현대미술에까지 눈을 돌려 세계 미술계 중심축을 홍콩과 상하이로 빠르게 옮겨오게 하고 있다. 아울러 오일머니 등으로 무장한 중동과 러시아 부호의 활약이 두드러진 것도 눈에 띈다.
올해는 이 잡지가 전체 100명의 파워인사 중 하이라이트에 해당되는 ‘파워 톱10’을 처음으로 발표해 주목된다. 그런데 카타르 국왕의 딸이자 카타르미술관기구 회장인 셰이크 알-마야사 빈트 하마드 빈 칼리파 알-타니(이하 알-마야사) 공주가 쟁쟁한 거물들을 제치고 1위에 올라 화제다. 석유부국으로 경제성장률 15%를 기록 중인 카타르는 세계적으로 값비싼 미술품을 많이 사들이는 나라로 정평이 나있다. 카타르 왕실은 점당 수백억원을 호가하는 마크 로스코, 앤디 워홀 작품을 수집했는가 하면 도하지역 3개의 국립미술관을 꽉 채울 정도의 미술품과 앤틱을 보유 중이다. 알-마야사는 현재 미술품 컬렉션의 자문역으로 크리스티 회장을 역임한 에드워드 돌만(Edward Dolman)을 기용하고 있을 정도니 그 컬렉션의 규모는 미루어 짐작할만 하다.
2위는 제프 쿤스, 앤디 워홀, 잭슨 폴락, 데미안 허스트, 무라카미 다카시 등 세계 최정상 작가들의 작품을 취급하는 다국적 화랑 ‘가고시안’의 오너 래리 가고시안이 선정됐다. 뉴욕(3개), 베벌리힐스, 런던, 홍콩 등지에 무려 10개의 화랑을 두고, 세계 최고의 영향력과 판매력을 과시하고 있는 가고시안은 최근들어 로버트 라우센버그, 리처드 아베든의 작품 취급권도 확보했다. 또 중국의 쩡판츠 등 점당 작품가 100억원대의 아시아 작가를 전속으로 포섭하고 있다.
‘톱10’ 중 4위에 오른 모델 출신의 러시아 미녀 다샤 주크보바 또한 근래 들어 급부상한 인물. 러시아 자원재벌이자 첼시 구단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연인으로, 아이리스 파운데이션(Iris Foundation)의 지원 아래 수년간 사모은 블루칩 작품을 모스크바의 대형 버스차고를 개조해 만든 ‘가라지 현대미술센터’를 통해 선보이고 있다. 전세계 아트페어며 각종 행사장을 오가며 바쁜 스케쥴을 소화하고 있는 주크보바는 ’팝(Pop)’ 매거진 에디터로 활동했던 경험을 살려 최근 영어판 ’가라지(Garage)’ 매거진을 론칭했다. 그런데 그 창간호 표지에, 데미안 허스트 디자인의 나비 모양 타투스티커를 여자 모델의 급소 부위에 부착해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다.
5위에 오른 프랑소와 피노 PPR그룹 회장은 미술계 파워인물 조사에서 늘 1, 2위에 랭크되는 최고의 실력자. 구치, 이브생로랑 등 명품패션과 쁘렝땅백화점 오너인 그는 베니스의 초대형 미술관 2개(팔라조 그라시, 푼타 델라 도가나)를 가득 메울 정도로 엄청난 양의 아트컬렉션을 자랑한다. 올해는 중국작가 장후안과 쩡판츠에 꽂혀 그들의 대작을 수집했는가 하면, 신예작가 토마스 하우시고와 제이콥 카세이의 작품도 구입해 이들 작가의 작품값을 급등케 했다. 그가 주목했다 하면 그 작가 작품이 전세계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불문률이 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우리에겐 중국계 인도네시아의 부호인 부디 텍(Budi Tek)의 ‘톱10’ 진입이 가장 흥미롭다. 다년간 중국 유명작가의 미술품을 수집했던 부디 텍(중국명 余德耀,위더야오)은 최근 들어 서양 현대미술품도 적극적으로 수집하면서 톱10 중 8위에 이름을 올렸다. 부디 텍은 세계적인 화랑인 데이빗 즈워너 (David Zwirner)로부터 독일의 떠오르는 유망작가 다니엘 리히터의 대작 회화를 구입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현재 상하이 부디 텍 재단에서 일하고 있는 김보경 씨(전 서울옥션 홍보마케팅팀장)는 “부디 텍은 2년 전 자카르타에 유즈(Yuz)미술관을 오픈한 데 이어 2013년에는 중국 상하이에도 미술관을 개관할 예정”이라며 “내년에는 베이징에서 자신의 수집품을 모아 컬렉션쇼를 열 것”이라고 밝혔다. 부디 텍은 한국 현대작가의 작품도 수집한 바 있다.
한편 각 부문별 ‘톱10’에는 낯익은 얼굴들이 다수 눈에 띈다. 파워 컬렉터 부문에선 미국 유명작가 작품을 다수 보유한 헤지펀드 매니저 스티브 코헨, 800여점에 이르는 앤디 워홀 컬렉션 등 막강한 아트컬렉션을 자랑하는 무그라비 형제, 골드먼삭스 창업자로 미국(뉴욕)과 독일에 사진전시관을 운영 중인 아르투르 왈터가 이름을 올렸다.
파워 큐레이터 부문에서는 2010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을 역임했던 마시밀리아노 지오니 등이 선정됐다. 또 파워 패트런(후원자) 부문에선 월마트의 상속녀로 아칸소에 초대형 미술관을 짓고 있는 앨리스 왈튼과 이탈리아 명품브랜드 프라다(PRADA)의 미우치아 프라다, 중국 타이캉보험 대표 첸동셍 등이 포함됐다.
파워 딜러(화랑주) 부문에서는 미니멀리즘 미술을 집중적으로 소개해온 뉴욕의 실력파 화랑주 데이비드 즈워너, 영국의 특급화랑으로 가공할만한 영향력을 떨치고 있는 화이트큐브의 제이 조플링 등이 선정됐다.
한편 파워 딜러 중 한국 국제(Kukje)갤러리의 이현숙 회장이 아시아지역 화랑주로는 유일하게 포함돼 눈길을 끌고 있다. 이 회장이 아시아 대표 딜러로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은 빌 비올라, 아니시 카푸어, 루이스 부르즈아, 안젤름 키퍼 등 세계적인 거장과 제니 홀저, 로니 혼, 안젤름 라일리, 장 미셸 오또니엘, 줄리안 오피 같은 블루칩작가 등 세계 정상급 작가 19명을 전속작가로 두고, 한국및 아시아마켓 등에 이들을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
아울러 바젤, 프리즈, 마스트리히트(네덜란드) 등 세계 유명 아트페어에 참가해 한국의 이우환 이기봉 김홍석 양혜규 등의 독창적인 작업을 세계 미술계에 소개하고 있는 것도 톱10에 이름을 올리는 데 주효했다. 또 1982년 화랑 창립 이래 젊은 한국작가들을 꾸준히 발굴해, 독려해가며 세계 유수의 미술관과 화랑에서 초대전을 열도록 주선한 점과, 양혜규 김홍석 정연두의 설치작품과 영상작업을 뉴욕 현대미술관(MoMA) 및 유럽 굴지 미술관에 소장하게 한 것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즉 국내외에서 42명의 일급 작가를 전속작가로 두고, 이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전문성과 앞서가는 글로벌 네트워트, 꾸준한 판매력 등이 아시아를 대표하는 화랑으로 국제갤러리를 꼽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
미술시장 분석가인 서진수 교수(강남대 경제학과, 미술시장연구소장)는 “최근들어 중국의 수집가와 기획자, 옥셔니어들이 엄청난 위용을 떨치며 아시아미술시장이 온통 ‘중국 판’으로 쏠리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아트딜러가 아시아 화랑으론 유일하게 권위있는 조사에서 톱10에 이름을 올리며 대표화랑으로 부각된 것은 의미가 크다”며 “앞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한국 뿐 아니라 중국및 동남아, 중동 등 세계 미술시장을 체계적으로 공략하는 화랑들이 더 나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미술 경매계를 이끄는 ‘옥션 파워’부문에서는 크리스티와 소더비의 간판스타들이 여러명 랭크돼 연간 4조~5조원을 거래하는 양대 경매산맥의 파워를 다시금 입증했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