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예산안이 법정시한에 임박해 가까스로 처리됐다. 졸속 심의, 날림 처리, 합의 불발의 관행과 구태가 또다시 재연된 것이다. 예산국회가 엉뚱한 정치투쟁으로 회기 내내 허송하는 동안 정작 핵심인 예산 심의는 뒷전으로 밀려나 나라살림과 민생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는 병폐가 고질화하고 있다. 부실 예산국회의 더 큰 폐단은 많은 의원들이 국가사업이나 민생보다는 지역구 사업 챙기기를 우선하는 풍토의 만연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사회간접자본 건설이나 지역 활성화 미명으로 정부안보다 4400억원을 더 늘려놓았다. 정부안보다 가장 많이 늘린 복지예산은 물론 경기 부양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지출도 적지 않지만 대학 등록금이나 영유아 보육지원 확대 등 다분히 선거를 의식한 정치예산의 흔적도 엿보인다.
문제는 이 같은 복지, 일자리 중심 예산을 떠받칠 재원이 충분치 않은 점이다. 전체의 28.5%로 늘어난 복지예산 때문에 당장 국방ㆍ안보 부문이나 자원개발 등 국책사업들이 영향을 받게 됐다. 국제환경의 최근 급변을 고려할 때 우선순위의 혼동은 멀지 않은 장래에 큰 대가를 치를 수 있다. 또 유행처럼 번지는 복지중시 정책은 인기주의에 휩쓸려 선후와 완급을 가리지 않은 채 무차별 전방위 복지 경쟁으로 번져 결국 엄청난 재앙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기왕 복지예산을 대폭 늘렸다면 집행과정에서라도 완급을 가리고 비용 효과를 제대로 분석함으로써 낭비와 비효율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 또 부진한 경기를 부추기려면 예산 조기집행이 불가피하다. 올해는 성장 전망이 3% 선으로 매우 불투명한 상황이고 유럽과 미국, 중국 등 주요 경제권의 동반부진이 계속돼 세입 확보가 여의치 않아 보인다. 나라살림을 최대한 긴축하되 경기 진작과 일자리를 위한 지출은 효율적으로 앞당겨 선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이른바 ‘버핏세’를 포함한 소득세법 개정은 일단은 중요한 정책기조의 전환으로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소득세 체제의 근본적인 혁신과정에 흡수되지 않은 채 과표구간 신설로 미봉됨으로써 세수 효과나 소득과세 형평성 등에서 기대만큼 크게 기여하지 못하게 된 점은 아쉽다. 정치적 조세나 유행이 아닌 응능부담과 공정과세를 지향하는 대폭적인 조세구조 개혁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