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인적쇄신을 둘러싸고 내홍이 깊어지고 있다. 비대위 김종인ㆍ이상돈 위원 등이 MB정권 실세 용퇴론을 제기하자 친이계가 김ㆍ이 위원 과거 전력을 문제 삼아 사퇴론으로 맞선 것이다. 급기야 김 위원은 “쇄신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사퇴할 것”이라며 배수진을 쳤고, 친이계는 세 규합과 다른 비대위원의 비리 폭로도 불사하겠다며 물러서지 않아 갈등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비장한 각오로 출범한 한나라당 비대위가 출발부터 삐걱대는 모습이 실망스럽다. 개혁과 쇄신을 기치로 힘을 합해 앞만 보고 달려도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운 판에 적전분열 양상을 보인다면 그 결과는 보나 마나다. 산소호흡기로 연명하는 처지에도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면 국민들은 한 가닥 남은 기대마저 접을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게 악화된 데는 일부 비대위원들의 가벼운 처신이 발단이다. 당 쇄신이 지상과제라지만 원칙과 절차는 필요하다. 그런데 이를 무시하고 완장 찬 점령군처럼 행세하니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디도스 사건과 관련한 최구식 의원 탈당 요구가 대표적 사례다. 당내에는 윤리위가 엄연히 가동되고 있다. 문제가 있다면 윤리위가 출당을 검토할 것이며, 본인도 검찰 조사 결과가 나오면 도의적 책임을 진다고 수차 밝혔다. 비대위원이 개인적으로 압박할 사안이 아니다. 더 치명적인 걸림돌은 일부 비대위원의 도덕적 윤리적 흠결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뇌물 사건으로 실형을 받은 인사, 철새처럼 이 당 저 당을 기웃거리던 인사, 당 정체성과 배치된 생각을 가진 인사가 휘두르는 칼에 누가 기꺼이 목을 내놓겠는가.
당을 뼛속까지 바꾸는 일이 화급하고 비대위의 역할과 책무가 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비대위가 대의와 명분을 갖추지 못하면 아무리 획기적인 개혁방안을 내놓아도 탄력을 받기 어렵다. 차제에 비대위원 인선의 적정성과 운영방식 등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 한 비대위원의 지적처럼 현 시점에서의 비대위원 사퇴는 ‘자살골’일 수 있다. 하지만 자살골 하나 먹는다고 경기에 지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 승리를 위해서는 자살골을 먹더라도 전력을 가다듬어 더 많은 골을 넣으면 된다. 한나라당 비대위는 진용을 다시 짜서 재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