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이 새해 벽두 역지사지(易地思之)론을 들고 나왔다. 그는 대법원 시무식과 기자간담회에서 ‘올해의 사자성어’라며 거듭 언급했다. “자신이 재판받는 입장이라면 어떠한 모습의 법관을 원할 것인지 생각하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개인 의견 표출로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일부 튀는 판사들에게 간접적 경고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는 모든 법관들이 가져야 할 기본 소양 아닌가.
양 대법원장의 역지사지론이 의미 있게 들리는 것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사법부의 권위와 신뢰 회복 때문이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망에 금이 가게 된 것은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국회 통과 이후 한 판사의 ‘뼛속까지 친미’ 발언으로 촉발된 법관의 ‘표현의 자유’ 논란이 그 계기가 됐다. 특히 국가원수를 ‘가카새끼 짬뽕’이라며 경박하게 조롱하는 대목에 이르면 실망감을 넘어 사법부에 대한 좌절과 배신감마저 들게 했다.
법관도 자연인으로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의견을 밝힐 수 있다는 주장은 강변에 불과하다. 법관이 어떤 일에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면 곧바로 판결의 신뢰성에 의문이 갈 수 있는 것이다. 설령 개인적 의견이라도 그렇다. 이는 결과적으로 사법부 전체의 신뢰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모든 재판의 공정성을 저울대에 올려놓게 된다. 최근 재판정에서 한 피고인이 판사를 향해 노골적인 비방을 한 것도 다 이런 판사들 때문 아닌가. 판사 자신의 정치적 이념적 소신이 대한민국의 헌법정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면 법복을 벗고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이 개인과 사회 모두를 위하는 길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
사법부의 모든 법관은 초심으로 돌아가 국민들이 원하는 법관의 참모습은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보기 바란다. 법관은 사회 갈등의 조정자로 공정성과 균형을 잃지 않는 법치와 정의의 마지막 보루다. 이게 국민들이 원하는 법관의 모습이다. 법관이 오히려 사회 갈등을 초래하는 당사자가 된다면 국가는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 법관이 혼탁한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커다란 바위처럼 묵묵히 제자리를 지켜줄 때 비로소 국민들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다. 이것이 역지사지를 강조한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