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시의회에 재의를 요구한 일차적 이유는 조례 시행에 따른 부작용이 워낙 크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다 최근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는 왕따 학생과 가해 학생 간 문제가 지나친 학생인권에 대한 우려를 더 부각시킨 것이다. 학생 인권에만 집착하는 전교조와, 반면 교권부터 정립하자는 교총이 다시 한번 맞붙게 됐다.
큰 틀에서 학생 인권은 보호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이번 학생인권조례의 경우는 본질부터 현실과 너무 동떨어지고 심했다. 진보성향 시도교육감이 교내 체벌을 금한 조치는 학생 간, 심지어 학생의 교사 폭력까지 다반사로 일어나는데도 이를 바로잡기는커녕 그 반대로 간 셈이다. 전교조를 위시한 좌파 시민단체들은 겉만 번지르르한 단어와 문구를 동원, 학생들의 무분별한 불만과 욕구를 앞장서 해소하도록 한 것이 바로 학생인권조례 주요 내용인 셈이다.
단적인 예로, 체벌과 교육 벌주기는 그 뉘앙스나 매뉴얼상으로 엄연히 다르다. ‘체벌은 교사의 비교육적 폭력’이라는 인식을 고착화시키는데 이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사랑의 매’는커녕 훈육 차원의 손들기, 팔굽혀펴기, 운동장 돌기 등도 금지되는 상황을 몰고 왔다. 학생이 대놓고 교사에게 대들어도 이를 저지할 방책이 없다. 무너진 교권은 그냥 놓아두고 학생 인권만 크게 세운다면 그 교육이 잘될 것인가. 미국은 지금도 16개 주에서 교육 벌을 과감하게 허용하고 있다. 적잖은 서울시의회 야당 의원들까지 체벌금지를 우려하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교육은 이념투쟁 도구가 아니다. 자녀를 잘 키워 사회에 내보내는 다듬는 과정임을 알아야 한다.
더구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학생들의 집회 자유, 임신ㆍ출산 및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 금지 등 모호하고 애매한 조항이 많이 포함됐다. 교칙으로 다소 제한이 가능하긴 하나 일선에서의 혼란을 너무 가벼이 본 것이다. 이런 우려로 압도적 야당 우위인 전북도의회마저 학생인권조례안 상정을 거부하고 있다. 학교운영위원회가 학생, 학부모, 교사 등 교육주체는 물론 지역사회의 의견까지 담아 만든 기존 학칙을 수정 보완해 교권은 물론 학생 보호까지 하겠다는 충북도교육청의 사례 역시 본받을 만하다. 서울시의회는 이번 재의를 계기로 학생인권 문제를 실사구시로 재점검하고 통 크게 교사와 학생, 학교 권위 모두 포함한 ‘학교인권조례’로 바꾸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