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을 앞두고 물가 오름세가 여전하다. 지난달 102개 주요 생필품 중 가격이 오른 품목이 68%나 된다. 다급해진 정부가 농축산물 공급물량 1.5배 확대, 핵심 품목 일일점검, 민생안정자금 14조원 지원 등 대책을 쏟아냈으나 얼마나 효과를 낼지는 의문이다. 경기불안에 물가상승이 지속되면서 소비심리마저 꽁꽁 얼어붙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신년 벽두에 내놓은 ‘품목별 실명제’는 첫발부터 헛짚고 있다.
물가정책은 땜질식보다는 생산에서 수요, 공급에 이르기까지 유통구조 혁신과 함께 농축산 분야의 근본적인 체질개선, 즉 선진화가 지름길이다. 서민생활과 직결되고 체감물가를 가늠하는 농축산물 등 생필품 분야를 우선 대상으로 잡아 유통단계만 줄여도 현재보다 반값 이하로 양질의 한우고기 등을 먹을 수 있다. 우선 관행처럼 횡행하는 배추, 무 등을 밭째로 사들이는 ‘밭떼기’ 등 재래식 거래를 제한하고 선물시장 도입을 검토하기 바란다. 거래 자체가 예측 가능해 가격 등락 대비가 순조로울 수 있다. 기업농은 아니더라도 영세농가들을 조직화해 수급조절 자체를 계량화한다면 더욱 좋다.
물가예측을 위한 작물재배 사전신고제도 필요하다. 이는 규제의 소지가 있긴 하나 성실 신고만 보장된다면 수급조절에 이보다 효과적인 방법이 드물다. 정부 방침의 반대로 움직여야 돈을 번다는 풍조가 만연한 점을 감안, 우선 정책신뢰 회복이 급하다. 성실하게 신고하면 상당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불신고자의 손실에는 대응할 필요가 없다. 물론 물가를 예측하고 대처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농산품은 공산품과 달리 파종에서 수확까지 기간이 긴 데다 자연재해 등 외생변수가 크기 때문에 단발식 대책은 안 된다. 적어도 1년 이상 중장기 대책이 필요한 것이다.
또 자유무역협정(FTA)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농축산업의 유통구조와 체질 개선은 급하다. 전체 120여만 농가 중 76만 가구의 재배면적이 1ha 정도로, 선진국과는 비교가 안 된다. 한우농가 17만 가구 중 70%가 10마리 이하를 키우는 실정이다. 이들 묶고 체계화함으로써 생산품의 고급화와 브랜드화로 소비자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정부가 주도하되 농민의 자발적 참여가 더 중요하다. 농협은 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금융 등 외형 키우기와 정치적 시류에 한눈 팔기보다 농축산물 수급 혁명에 앞장서야 한다. 지방자치단체까지 가세하면 금상첨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