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체제 북한의 개방 여부가 늦어도 상반기 중에 드러날 전망이다. 통일부에 따르면 오는 6월 7일 북한이 우리에게서 빌려간 식량차관 7억2004만달러(약 8230억원) 가운데 첫 상환액 583만달러(약 67억원)를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돈이 상환된다면 북한의 개방 의사는 분명하다고 보아 무방하다. 일단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는 시금석인 까닭이다.
이 식량차관은 김대중ㆍ노무현 대통령 시절 2000년에서 2007년까지 연리 1%의 저리로 10년 거치 20년 상환 조건으로 공여한 것이다.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을 보다 못해 당시 좌파 정부가 좋은 조건으로 주었지만 이마저 받을 수 있다는 생각들을 했는지는 의문이다. 정부 추정의 북한 외채 규모는 약 200억달러에 이르는데 지금까지 제대로 원리금을 갚은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동구 공산주의가 몰락하기 전 주로 소련과 동구권 국가들로부터 들여온 차관의 경우 원금은커녕 이자도 지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대 채권국인 러시아가 약 80억달러의 북한 채무 중 일부를 탕감해줬다는 것은 일종의 고육책일 수 있다. 그렇다고 갚을 여력이 생겨난 것은 아니다. 헝가리와 체코 등을 상대로 탕감 외교를 벌여온 것 역시 딱히 성과가 보이지 않았다. 유럽계 은행들이 왜 북한을 기피 대상으로 삼았는지 알 만한 대목이다.
식량차관은 전체 북한 상대 공여 차관 중에서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다. 경수로 건설을 위해 1998년부터 2006년까지 제공한 대출액이 1조3744억원, 남북한을 잇는 철도ㆍ도로용 부지 자재 장비 1494억원, 경공업 원자재 887억원 등 차관 규모는 원리금 합쳐 3조5000억원에 이른다. 이 돈을 받기 위한 안전장치는 없다. 차관 계약서상에도 차관을 제때 상환하지 못할 경우 연체이자 2%가 붙는다고 돼 있을 뿐 상환을 강제할 수단은 없다.
북한 개방은 자신들과 우리 모두에게 중요하다. 하지만 차관조차 못 갚는 실정이라면 잘 될 리 없다. 어차피 받기 어려운 차관이라면 우리로선 상환 기일을 연장하거나 대체상환을 요구할 수 있다. 중국이 하듯 우리도 북한 내 광권 획득 등 자원개발에 참여토록 하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개방의 냄새를 피우는 새 체제 북한이 그것만이 살길이라는 인식을 하게 된다면 꼭 무리한 요구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