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헤지펀드 첫 출범
철저한 리스크관리 앞서
투자윤리 확립이 최우선
자산운용사업 성장 기대
아이를 키우면서 놀라웠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첫걸음’이다. 때로는 벽을 잡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나뒹굴기도 하지만 기어이 혼자서 일어선다. 아이의 얼굴에 번지는 득의만만함과 세상 첫 도전에 성공한 만족감이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가득 차 있었다.
지난해 12월 23일 9개 자산운용사가 설정한 12개 펀드, 1500억원 규모로 한국형 헤지펀드가 첫걸음을 내디뎠다. 지금은 10개사 13개 펀드로 늘어났고 3개사가 추가 펀드 설정을 준비하고 있다. 사실 헤지펀드는 위험을 회피한다는 의미를 갖는 ‘헤지’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시장의 변동위험을 다양하게 헤지한 펀드(hedged fund)이다. 따라서 시장상승기에는 높은 수익을 추구하지만, 시장하락기에는 손실을 최소화하는 펀드로 정의할 수 있다. 이런 유래와 함께 헤지펀드의 다양한 기능에 대해 살펴보자.
첫째, 헤지펀드는 시장가격이 비정상적으로 괴리될 경우 차익거래를 통해 수익을 추구함으로써 정상적인 가격형성 기능에 크게 기여한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의 가격 발견 기능과 유동성 공급 기능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둘째, 연기금 등의 장기ㆍ안정적인 대체투자 수요에 부응함으로써 시장에서 기관투자자의 저변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셋째, 장기적인 관점에서 헤지펀드라는 새로운 투자수단이 제공됨으로써 자산운용산업의 양적ㆍ질적 성장이 촉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첫술에 배 부르랴’란 속담도 있듯 지난해 출범한 한국형 헤지펀드가 처음부터 만족스러워할 순 없을 것이다. 아기가 수차례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의 믿음과 격려로 반듯한 걸음을 걷게 되듯 한국형 헤지펀드 역시 안정적인 정착까지 다소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면 한국형 헤지펀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일까. 우선 운용과 관련해 철저한 리스크 관리와 투자윤리 확립이 중요하다. 특히 운용전문인력의 도덕성에 대한 부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만에 하나 불건전한 운용 사례가 발생하면 당사자뿐만 아니라 헤지펀드 산업 전체에 대한 신뢰 저하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또 선진 운용기법 습득과 다양한 투자전략 활용 등을 통한 안정적인 성과 시현도 매우 중요한 요소다. 출범 초기 투자규모의 영세성과 편중 현상은 안정적인 운용성과(track-record)가 시현될 경우 눈 녹듯 사라지게 될 것이다. 성과가 조금씩 나타나게 되면 다양한 투자자들, 특히 대형 기관투자자들의 투자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많은 논의와 검토 과정을 거쳐 한국형 헤지펀드가 출범했다. 출범의 의미는 ‘이제 좋은 환경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스포츠 경기에서 본다면 잔디도 보수하고 스타디움도 말끔하게 단장했다. 이렇게 좋은 경기장에서 소위 ‘뻥 축구’를 할지, 아니면 세계적인 플레이어들이 몰려와 수준 높은 환상의 경기를 보여줄지는 전적으로 우리 모두의 노력에 달려 있다.
내년, 아니 좀 더 세월이 흐른 뒤에라도 지금 마련한 운동장이 비좁아 크고 멋있는 경기장을 하나 더 지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