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보다 못한 안보의식
천안함·연평사건 무덤덤
北 미사일에 월드컵만 응원
간첩과 합석해도 모를 세상
회사 영어마을 사업에 관여하면서 4년 정도 파란 눈의 이방인들과 동고동락할 기회가 있었다. 그들과 부대끼면서 각별히 느낀 것 중의 하나를 꼽으라면 ‘안보’다. 너무 생뚱맞을까. 영어와 안보, 썩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긴 하다. 그러나 그들과의 인연으로 안보의 가치를 몇 번이나 진실로 느낀 기억은 새롭다.
2년 전 바로 이맘때. 그러니까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사건으로 온 나라가 충격에 빠졌다. 이어진 주말 내내 참혹한 현장은 TV 화면을 통해 국내는 물론 전 세계로 생중계됐고, 북한 소행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분노는 커져갔다. 사건 발생 3일 뒤인 월요일 오후, 늘 칼퇴근이던 외국인 강사들이 사무실로 모여들었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장병들은 살아 돌아올지, 사태가 어떻게 될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평화롭기 그지없는 사무동 분위기, 특별한 대꾸조차 없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돌아서던 그들의 모습이 눈에 잡힌다. 부끄러웠다.
8개월 뒤, 이번엔 연평도 포격도발 사태가 터졌다. 대명천지에 대포알이 날아들면 영락없는 전쟁이다. 남아공 출신 백인 강사 부부가 두 눈 동그랗게 달려왔다. 딸까지 한국에 데려와 공부시키는 그들이다. 걱정 말라며 그들을 진정시키고도 그 여파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부모, 형제, 친구로부터 귀국 종용을 받은 외국인들이 적지 않았다. 이 사건 이후 특별수당 타령까지 들어야 했다.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쯤으로 대우받기에 이른 것이다. 그때 당신들은 왜 그렇게 천하태평이냐는 한마디가 아직도 뇌리에 남는다.
또 4개월 뒤, 일본 동편에서 초강력 지진 속보가 인터넷을 타더니 급기야 가공할 쓰나미가 해안 도시를 덮쳤고, 수많은 희생자가 속출했다.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너무도 자연스런 모습으로 모두들 그 광경을 지켜봤다. 강사도 구하기 어려운데 외국 강사들 줄줄이 들어오겠네, 지진 없는 나라가 좋아, 돈 있고 시간 많으면 제일 살기 좋은 곳이지, 상태가 썩 괜찮은 쓰나미 동영상을 골라 여름방학 캠프 자료로 삼자 등등. 간식까지 먹어대며 해댄 말, 포탄 떨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그게 할 소리인가. 정말 민망했다.
이쯤에서 고백할 것이 더 있다. 천암함 사건이 터진 이후 객지 좁은 숙소에 틀어앉아 며칠이고 밤잠을 설쳤던 것은, 그러면서 육군 초병은 괜찮겠지 괜찮겠지 수도 없이 중얼댔던 것은, 분노와 슬픔의 공유라기보다 그 무렵 동부전선 최전방에서 철책을 지키고 서 있을 아들녀석의 오로지 안녕과 위무가 더 급했기 때문이었다. 연평도 포격도발 때는 그놈이 제대해서 천만다행이라며 술잔까지 기울였다. 원어민 강사들을 나름 진정시키려 든 것도 따지고 보면 그들을 잡아두기 위한 가벼운 술수에 지나지 않았다. 이 위장되고 저급한 안보의식과 극단적 이기주의, 그리고 비겁함이 한심스러울 뿐이다.
고장 난 안보의식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2006년 독일월드컵 때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펑펑 쏘아대도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친 우리다. 외신들이 일제히 이해할 수 없는 국민이라며 힐난해도 별반 자극도 없었다. 초등학생 절반 이상이 6ㆍ25는 일본과의 전쟁으로 알고 있고, 성인 대다수는 발발 연도를 기억해 내지 못한다고 한다. 하긴 천안함 폭침사태가 작년인지 재작년인지 헷갈린다는 최근 설문조사도 있긴 하다. 북한이 ‘광명성 3호’라는 장거리 미사일을 4ㆍ11 총선 직후쯤 발사하겠다고 고집해도 그러려니 한다. 총선 후보에 간첩인지 그 사촌인지 분간 안 되는 이가 다수 있다 해도 시큰둥하다. 머잖아 북한 공작원과 둘러앉아 점심까지 먹어야 할 판이다. 우리의 안보의식, 참으로 부끄럽고 두렵고 참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