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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포럼>복거일 “봄날의 풍경 속으로”
사람들이 텔레비전, 컴퓨터, 휴대전화와 같은 화면 속의 세계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들이 나오고 있다. 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DMB)을 보면서 25t 화물차를 몰던 운전사가 자전거 선수들을 치어 죽게 한 사건은 이 점을 아프게 일깨워주었다.

DMB를 보면서 차를 몰면, 만취하고 차를 모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화면 속의 가상 세계에서 활동하다가 도로에서 운전한다는, 실재 세계로 돌아와서 제대로 반응하는 것은 뇌로선 결코 간단한 과제가 아니다. 잠시만 화면을 봐도 도로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대처하는 데는 당사자가 느끼는 것보다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차를 몰면서 DMB를 보는 행태는 비교적 작은 문제여서 그 위험이 널리 알려지고 적절한 규제를 하면 어느 정도 줄어들 터이다. 그러나 화면 속의 세계에 자주 들어가고 거기 오래 머무는 데서 나오는 부정적 영향들은 우리의 심성에 아주 근본적 수준에서 작용하므로 대처하기가 훨씬 어렵다. 어려서부터 화면 속의 가상 세계에서 많이 살면서 폭력적 전자 게임을 즐긴 젊은이들이 정서적으로 불안하다는 사실은 특히 걱정스럽다.

우리의 선조들은 모두 자연 속에서 살았고 자연 속에서 잘 살도록 진화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은 자연 속에서 편안하고 현대 도시의 인공적 환경 속에선 아무래도 서투르고 불안하다. 산업혁명 이후 사람들이 겪는 신체적 및 정신적 병들 가운데 상당수가 그런 환경의 변화에서 나왔다.

이런 상황에 대한 합리적 반응은 자연 속으로 되도록 자주 들어가서 오래 머무는 것뿐이다. 몸이나 마음이 지치거나 아프면, 우리는 한적한 시골로 가서 자연 속에서 지내고 싶어진다. 그렇게 하면 흔히 아픈 몸과 마음이 낫는다.

바야흐로 자연이 가장 매혹적인 때다. 아파트 한쪽의 작은 숲도, 길가 풀섶도 눈여겨 보면 나름 아름다운 생태계여서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초봄의 쬐끄만 꽃들은 어느새 이울었지만, 늦봄의 화사한 꽃들이 대담하게 피었다.

야트막한 뒷산에 오르면 오월엔 나뭇잎들이 꽃들보다 오히려 아름답다는 얘기가 실감난다. 땀 밴 이마를 스치는 시원한 바람에 물결치는 참나무 연두빛 잎새들은 도시의 각박한 나날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다시 보얗게 만들어주는 듯하다.

검푸른 솔잎들 사이에서 새로 돋은 연두빛 송화 줄기들이 어릴 적 기억들을 불러낸다. 목월의 시구가 저절로 나온다.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오리 /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 산직이 외딴 집 눈 먼 처녀사 / 문설주에 귀 대이고 / 엿듣고 있다’

‘윤사월’ 속 풍경은 오래 전에 사라졌다. 해방과 6ㆍ25 전쟁을 겪으면서, ‘산직이’로 상징되는 전통 사회는 사라졌다. 그 사회의 실상은 풍요나 안락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래도 목월의 시는 우리 가슴에서 그리움의 물결이 일도록 만든다. 점점 각박해지는 도시의 일상에서 잠깐 벗어나 봄날의 아름다운 자연 속으로 들어가서 낭송하는 시 한 편은 삶에 넉넉함을 줄 수도 있다.

‘산빛은 제대로 풀리고 / 꾀꼬리 목청은 티는데 / 달빛에 목선(木船)가듯 조는 보살(菩薩) / 꽃그늘 환한 물 조는 보살(菩薩)’

<박목월의 ‘산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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