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 외암민속마을을 둘러봤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아산 현충사를 참배하고 귀경길에서였다. 500여년 전부터 형성된 예안 이씨 직성촌으로 국가지정 문화재로 돼 있는 곳이다. 안동 하회마을 등과 함께 우리나라의 몇 군데 남아있지 않은 선조들의 삶의 현장을 살펴볼 수 있는 전통 마을이다. 그런데 이렇게 귀중한 문화유산이 요즘 희대의 사기꾼 때문에 또다른 유명세를 타고 있다. 부실금융기관으로 영업정지를 당한 미래저축은행의 김찬경 회장이 마을 전체의 가옥 67채 가운데 10여채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후다. 한 사람에게, 그것도 아주 몹쓸 인간의 수중에 온 겨레의 소중한 문화재가 대거 들어갔다는 생각을 현장에서 하고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대한민국이 이렇게 허술한 나라였는가 싶은 의아함과 한탄도 일었다. 자유매매가 가능한 사유재산이므로 어쩔수 없는 일이었는지는 몰라도 문화재 차원에서 보다 철저한 관리 원칙이 마련됐어야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봤다.
김찬경이 어떤사람인가. 고객들이 맡긴 피땀어린 돈을 개인돈처럼 제멋대로 빼내쓰고 급기야는 거액을 들고 외국으로 달아나려다 현장에서 채포된 인물 아닌가. 단순한 경영 부실 때문이 아니라 사기꾼, 신용불량자가 작심하고 저지른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행위다. 금융감독기관은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하는 점이 개탄스럽다.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기는커녕 대국민 사과 한마디 없는데 이래도 되는 것인지 분노마저 솓구친다. 입버릇처럼 민생안정이니 서민생활 향상을 되뇌이던 정치권은 오로지 세력 다툼과 자리보전에만 급급한다.
대한민국이 어리숙하고 허술한 구석은 요즘 또 있다.
바로 통합진보당 사태다. 19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경선 부정을 둘러싼 분란 양상이 갈수록 가관이다. 주말에는 급기야 폭력난동 사태까지 벌어져 비당권 파의 두 공동대표가 언론보도 표현을 빌면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무법천지 난투장을 연출했다. 통진당 부정사건을 통렬히 비판하고 쇄신할것을 촉구하는 진보 성향 인사들의 한결같은 촉구와도 정반대 현상이어서 놀랍다.
경선 부정 분란 와중에 드러나는 통진당 당권파의 실체에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비당권파의 유시민 공동대표가 제의한 공식행사에서의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 문제를 비롯해 종북보다 종미가 더 큰 문제라는 당권파 비례대표 당선자의 발언, 북한 핵실험의 최종 목표는 북ㆍ미 간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한반도 통일의 이정표를 세우겠다는 것이라는 당 간부의 주장 등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핵실험은 핵문제가 아니라 엄밀한 의미에서 반제(反帝) 정치의 문제”라고 주장한 이 당간부는 노무현 정권 때 적발된 일심회 사건을 “미국과 수구 보수세력의 종합기획”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모두가 국민을 우롱하는 주장들이 아닐 수 없다. 북한과 연결지으면 반사적으로 색깔론이라며 어깃장을 놓는 세력이 존재한다. 그러나 엄연한 친북 종북을 우려하고 경계하며 척결해야 한다고 믿는 국민이 더 많다는 현실을 간과할 수 없다. 건강한 보수와 건전한 진보의 존재가치를 만끽할 날은 언제인가. 경제인이든, 정치인이든, 공직자든 그 누구도 국민을 우롱하는 사태를 더 이상 되풀이 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 위임으로 통치를 하는 정부가 무엇보다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
/최희조 세종대 석과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