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스트 양성화 논의가 정치권과 학계를 중심으로 다시 일고 있다. 정권 말이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권력형 비리의 고리를 끊는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게 양성화 주장의 근거다. 이번 정부만 해도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 정권 실세들이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에 연루, 쇠고랑을 찼다. 큰돈을 받고 로비에 가담한 것이다. 사상 최악의 금융 비리인 저축은행 사태와 청목회 불법 후원금 사건 등이 모두 불법 로비와 얽힌 사건들이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우리도 로비스트를 합법화하자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로비스트 양성화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5대 국회 이후 많은 논의가 있었고, 특히 17대에서는 정몽준 의원 등이 주도, 관련법을 발의했다. 국회와 정부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로비스트의 등록을 의무화해 불법적이고 음성적인 뒷거래를 근절하자는 게 요지다. 그러나 자신들의 영역 침범을 우려한 변호사업계의 강한 반발과 로비력의 빈익빈 부익부에 따른 부작용 등을 이유로 번번이 뜻을 이루지 못했다. 로비와 로비스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입법을 가로막는 요인이 됐다.
그러나 언제까지 관련법 제정을 미룰 수는 없다. 많은 이익단체들이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온갖 연고와 금품을 동원해 로비를 벌이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관련 법과 제도가 없다 보니 밀실에서 검은 거래와 대가성 향응이 판을 치는 것이다. ‘권력형 게이트’의 출발이 대개 이렇다. 수요는 있는데 공급이 따르지 못하면 자연 불법과 편법이 기승을 부리고, 사회적 혼란은 확산될 수밖에 없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은 로비스트가 고용돼 합법적으로 고객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로비스트 제도의 합법화는 정책 결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다양한 계층의 이해를 반영하는 등 여러 가지 장점과 순기능이 있다. 그러나 합법화에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를 어떻게 최소화하느냐가 로비스트 제도 성패의 관건이다. 무엇보다 투명하고 공정한 로비활동이 전제돼야 한다. 가령 전직 고위공직자 등이 이해관계가 맞물린 업체에 로비스트로 고용돼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친다면 이전과 다를 게 없다. 로비스트를 고용하기 어려운 집단이 더욱 소외되며 상대적 박탈감을 받게 되는 것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19대 국회가 개원하면 정치권이 더 치열하게 논의하고 건강한 로비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생산적인 결론을 도출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