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남부 쿠스코 지역 안데스 고산지대에서 헬기 추락 사고를 당한 한국 건설전문가 8명이 결국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가족과 회사 관계자는 물론 모든 국민들이 생존 가능성에 실낱같은 기대를 걸었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들은 페루 정부가 발주한 1조8000억원 규모의 수력발전소 공사 후보지를 현지 답사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페루는 국내 업체의 발길이 뜸했던 신개척지다. 더욱이 댐 건설과 치수 사업 등을 일컫는 물시장은 ‘블루골드’로 불리는 미래 성장산업이다. 고인들은 이번 사업을 반드시 성공시켜 남미의 물시장 진출 교두보를 마련하겠다며 접근조차 힘든 오지에 뛰어들었다 희생됐다. 정부가 그 정신과 용기를 기리기 위해 훈장을 추서키로 한 것은 당연한 조치다. 이들은 조국을 지키다 전장에서 산화한 순국 장병들과 하나 다를 게 없는 구국의 전사들이다.
새로운 수출시장을 개척하는 일은 그야말로 사활을 건 전쟁이나 다름없다. 목이 좋은 곳은 이미 경쟁이 치열하다. 그렇다면 경쟁국들이 주저하는 더 오지로 찾아들어가야 한다. 이런 곳은 대개 내전 등으로 치안과 정정이 불안하고, 기후 조건이 매우 열악한 지역이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진출이 미미했던 아프리카, 남미, 중동 지역 등이 그런 곳이다. 실제 우리 기업 직원들이 이런 곳에서 일하다 극한의 위험에 처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몸값을 노리는 무장괴한에게 납치되고 반군들에게 억류당하거나, 심지어 폭탄테러에 노출돼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많았다. 그 외에도 말라리아 등 풍토병과 무더위, 혹한 등 악천후에 시달리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아시아의 변방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일구며 세계 10위권 경제강국으로 우뚝 선 것은 고인들처럼 오직 열정과 사명감으로 해외시장을 열어간 기업 첨병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해외 산업전사들은 자원 개발과 신시장 개척을 위해 숱한 위험과 난관 속에서도 지구촌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다. 이들의 노고와 헌신에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페루 참사로 국내 최고 수자원전문가들을 잃게 된 것은 국가로서도 큰 손실이다. 해외 개발사업은 업무의 특성상 높은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참에 해당 기업은 물론 정부 차원에서 안전 시스템을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 이번 사고처럼 기상이 갑자기 악화되는 등 예측과 안전보호에 한계가 있다지만 위험 상황을 최대한 방지하는 체계적인 매뉴얼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해외 전사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면 이들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