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아니 검찰 스스로 국민적 의혹과 비판을 자초하며 도마 위에 올라섰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지난 4월 대검찰청은 국무총리실 불법사찰 사건 재수사에 나서면서 ‘사즉생(死卽生)’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나 막상 13일 발표된 그 결과는 수사 의지는 물론 검찰의 존재 자체를 의심케 하기에 충분하다.
검찰은 박영준 전 총리실 국무차장-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인규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이 불법사찰의 비선(秘線)이라며 이들을 포함한 5명을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종결했다. 최초 수사 이후 폭로를 근거로 한 사실 규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파이시티 비리 사건으로 이미 구속 수감된 박 전 국무차장이 사건과 관련된 모든 사안을 책임지고 주도했다는 것인데 이를 선뜻 믿어줄 국민은 거의 없다. 수사과정에서 나온 주요 사찰내용 보고 체계에서도 ‘VIP 보고용’은 따로 있었고, 총리실에서 청와대 라인을 거쳐 최종 VIP 또는 대통령실장으로 명기돼 있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안이다.
재수사 핵심은 ‘몸통’과 ‘윗선’ 규명이었다. 그러나 검찰은 정정길 당시 대통령실장은 서면조사로, 권재진 법무장관은 해명성 진술서로 대체하면서부터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사건 진상은 물론 증거 인멸과 사건 관련자들의 입막음용으로 건네진 수천만원대 뭉칫돈의 실체와 그 원천까지 결국 더 미궁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구도였다. 그러니 그저 수고비 조로 순수한 마음으로 개인 차원에서 줬다는 식의 당사자들 진술이 그대로 채택된 것이다. 새롭게 밝혀진 것이라면 사법부 수장인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사찰 대상에 포함됐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검찰은 500건의 추가 사찰 의혹 중 기업체 관련 수사 등 3건만 기소 내용에 포함시켰다.
재수사는 사실상 의혹 핵심 당사자들에게 면죄부를 준 셈이 됐다. 우선 검찰이 목숨까지 걸고 나선 재수사 결과에 대한 권 법무장관의 반응이 궁금하다. 책임질 사안이면 미적대지 않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여기서 끝날 것 같지 않다. 정치권, 특히 새누리당마저 재수사 결과에 불만이 커 특검 합의는 시간문제가 되고 있다. 여론도 재수사에 대한 수사까지 특검을 하라는 것이 대세다. 내곡동 사저 파문, BBK가짜편지 사건을 포함, MB정부 3대 의혹 모두 특검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법질서를 바로잡고 정의사회 구현을 위한 초석이 된다면 그 이상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