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가 아닌 인성교육
내 아이만이 아닌
우리 아이에 대한 관심이
학교폭력에 대한 해답
‘12층에 이사 왔어요. 자기소개입니다. 힘세고 멋진 아빠랑 예쁜 엄마와 착하고 깜찍한 ○○, 귀여운 여동생 ○○, 저희는 12월 16일날 이사 왔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지난해 12월 청주의 한 아파트에 이사 온 7살짜리 어린이가 엘리베이터에 손으로 쓴 인사장을 붙였다. 이 어린이의 인사장에 감동받은 이웃주민들이 ‘창의성이 뛰어나구나, 떡 잘 먹었다’ ‘산타할아버지께서 우리 통로에 큰 선물을 주셨구나’ ‘앞으로 보면 인사하고 지내자, 웃는 얼굴로’ 등의 답장을 달면서 엘리베이터 안은 따스한 인사말로 가득했다.
이 사연이 기사화되면서 네티즌들 사이에 ‘훈훈한 사연’이라며 적잖이 화젯거리가 되었다. 아이에게 지나친 관심이 쏟아지자 부모가 곤혹스러워했다는 얘기를 듣고 그 심정이 이해가 되어서 아이의 이름은 익명으로 처리했다. 하지만 삐뚤빼뚤 손으로 쓴 인사장으로 아파트에 행복한 기운을 퍼뜨린 이 어린이는 아마도 주민들의 사랑과 웃음을 가득 받으며 생활하고 있을 것이다.
최근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보도되는 ‘학교폭력’ 문제를 보면서 문득 이 이야기를 떠올렸다. 먼저 인사하는 아이, 이를 따듯한 마음으로 반기는 이웃. 이것이야말로 입시경쟁과 학교폭력 등에 노출된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보호하고 보살피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내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대한민국 부모들의 열정과 노력은 세계 최고일 것이다. 요즘은 둘도 아닌 하나만 낳아 온 정성을 다한다. 잘 먹이고 잘 입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사교육비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여기에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아이를 정말 잘 키우고 있는지 의문이다. 중산층 이상의 가정일수록 아이들을 일찌감치 입시경쟁으로 내몬다. 방과 후에는 친구와 어울리기보다는 학원을 전전하며 선행학습에 매달린다. 주변 어느 중학생은 입시 외 과목은 아예 공부도 않고 시험지 답을 전부 찍고 나왔다고 한다. 인간에 대한 예의, 시민으로서의 성숙함 등을 가르치는 부모는 거의 없다.
두 번째는 ‘울타리 안의 내 아이’에만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 아이의 친구는 ‘친구’가 아니라 ‘경쟁에서 이겨야 할 대상’이다. 부모의 생각이 이렇다 보니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친구나 이웃에 관심조차 없다. 물론 부모의 관심이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는 이웃 아이에 대한 관심은 더욱 없을 수밖에 없다. 전 국민의 절반이 아파트 생활을 하고 있어서 이웃과의 단절은 불가피한 일상이다. 문만 닫으면 간단하게 외부와 단절되는 나 또는 내 가족만의 공간은 이웃이나 공동체를 가꾸는 일을 어렵게 한다. 억지로 노력하지 않으면 모든 가구가 그저 외로운 섬이 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내 아이 잘 키우기에만 열중한 나머지 오히려 내 아이에게 해로운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웃에 대한 배려나 예의가 없는 아이, 내 아이 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부모들의 그릇된 공동체 의식은 부메랑이 될지 모른다. 학교폭력이 단순히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큰 해악을 끼칠 수 있기에 걱정이 크다.
우리가 내 아이를 이웃을 배려하며 어울릴 줄 아는 우리의 아이로 키워야 하는 이유는, 또 가깝게는 이웃의 아이로 조금 멀게는 우리 사회의 모든 아이로 관심을 갖고 배려하며 도움을 주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내 아이를 위해서다. 울타리를 낮추어 내 아이를 우리 아이들로 확장하는 부모가 늘어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