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임 극장장·국수호 감독
한 무대서 춤 공연 펼쳐 감동
작지만 큰무대 관객들로 성황
시니어 활동 새 가능성 이목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의 한 연극공연장에서 특별한 무대가 마련됐다. ‘스타’라는 좀 촌스런 문패를 단 한국춤 공연이었다. 스타들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스타란 말이 주위에서 띄워주며 불러주는 말이지 대놓고 ‘나는 스타입네’ 하는 건 쑥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무대에 선 주인공은 이런 수사가 지나치지 않은 춤꾼이었다. 70, 80년대 한국춤을 이끌어온 스타 무용수로, 예술감독으로 활동해온 최정임 정동극장장과 국수호 디딤무용단 예술감독이 한 무대에 선 것이다. 예술지도자, 경영자로서가 아닌 춤꾼으로서의 오랜만의 솔로 무대는 팬뿐만 아니라 이들에게도 남달랐을 법하다.
최 극장장은 20여년간 국립무용단 수석무용수로 활동해오면서 수많은 작품의 주역을 맡아왔던 터라 무대는 안방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그는 고심했다. 극장장으로 공연표 한 장이라도 더 팔아보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와중에 작품에 매달릴 새 없었다. 한 달간 밤중에 작품을 만들고 연습했다. 그의 순원왕후를 기리는 정갈한 춤도 좋았지만 27세에 요절한 여류문인 허난설헌의 통절한 슬픔을 위로하고 천도하는 춤, 무무(巫舞)는 울림이 깊었다. 국수호는 예나 지금이나 명실 공히 스타다. 관객을 쥐었다 놓았다 할 줄 아는 카리스마가 있다. 무대에 선 국수호는 60대 중반의 나이가 무색하게 가볍고 날랬다. 희롱하는 발디딤새, 흥에 겨워 꿈꾸듯, 유혹하듯 눈썹을 찡끗거릴 때 객석은 한량의 풍류에 빨려들어갔다.
한국무용의 극장시대를 연 송범의 뒤를 이은 국수호의 춤극은 비로소 세계적 보편성으로 나아갔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요즘 유행어로 서양음악과 전통춤의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했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한국의 춤사위로 형상화한 선도적 작업, ‘티벳의 하늘’ 등의 힘찬 남성무는 한국춤의 지평을 넓혀놓았다.
이번 공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막간의 즐거움은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깍두기 역할이다. 소품을 들이고 나는 일, 공연자의 의상을 거드는 일을 공연의 한 과정으로 연결시킨 시도는 새롭고 즐거웠다. 영상과 국악 라이브연주까지 즐길 게 많은 작지만 큰 무대였다. 이날 두 차례 공연은 성황을 이뤘다. 150석 객석은 빈자리 없이 꽉 들어찼고 관객들은 숨을 죽이며 춤사위, 손짓 하나하나를 따랐다.
대극장 무대의 춤이 뷰파인더 속 하나의 풍경에 그친다면 소극장의 매력은 역시 호흡을 나누는 소통에 있다.
한국근현대예술가기념사업회의 기획공연으로 마련된 이 자리는 몇 가지 가능성을 보여줬다. 한국춤을 보여주는 방식의 새로움과 소극장 활성화, 여기에 시니어 무대의 활용 가능성을 봤다. 세계 시장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한국춤이지만 그것만으로는 한류 붐을 함께 타기 어렵다. 주변 장르와의 콜라보도 필요하다면 끌어들이는 게 좋다. 시니어 무대는 연구과제다. 예술가의 영원한 로망은 무대에 서는 일이다. 스타가 나서야 할 무대도 있지만 시니어가 활동할 수 있는 공공 영역도 충분하다. 법인화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는 국립무용단의 숙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도 어쩌면 가까운 데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