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 여파가 갈수록 심상찮은 가운데 삼성전자가 ‘위기경영체제’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위기경영 2탄인 셈이다. 유럽 재정위기가 실물로 전이되는 현상이 점차 뚜렷해지고 4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가 재연될지 모른다는 최고경영자의 판단 결과라고 한다. 지난 5월 이건희 회장은 유로존 위기현장을 직접 둘러본 뒤 예상보다 심각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소리 소문 없이 한 달 전부터 진행되고 있는 삼성의 위기경영은 결코 이웃집 얘기가 아니다.
실제로 올 상반기 국내 10대 그룹 중 삼성전자와 현대차그룹만이 선전했을 뿐 여타 기업은 부진을 면치 못했다. 이 와중에 삼성전자는 최고 실적을 거둘 것이 확실시된다. 그러나 최대 시장인 유럽권의 유로가치 급락으로 환차손이 워낙 커 최고 실적이 빛바래고 말았다. 앞으로 이런 상황이 더 심화할 것으로 삼성은 보고 있다. 때문에 연간사업계획을 무시할 정도로 즉각적이고 강력한 대응체제를 갖춘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해야 하는 것이 우리 앞의 자명한 현실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삼성전자는 4분기에 약 1조원이라는 사상 최악의 영업손실을 내는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국제적인 소비 급감에도 올해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자신할 정도로 위기 대처에 능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전략이 주효했다. 여타 기업도 이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상반기 무역흑자가 30% 줄고 3분기 수출전망이 3년 새 최저치에 이르렀다. 정부는 ‘1유로=1.20달러’인 마지노 선마저도 불안하다는 삼성의 판단을 참고로 수출전선부터 챙기기 바란다.
미국 제조업 경기가 3년여 만에 최악의 상황에 놓였다. 제조업 신규수주 물량이 급기야 9ㆍ11 테러 후유증과 맞먹는 수준이다. 중국 역시 제조업 경기가 8개월째 바닥을 헤매고 수출당국은 물량으로도 감당 못할 이상 징후를 하소연한다. 유로존은 되레 실업률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밑 빠진 독 신세다. 세계 3대 경제권이 동시에 요동치는 형국이다.
우리를 불안케 하는 복병은 내부에도 숱하다. 하반기 경제정책 최우선 과제가 된 가계부채는 실제 개인자영업 대출 등을 포함하면 이미 1000조원대를 훌쩍 넘어섰다. 일자리도 늘려야 하고 부동산시장 회복도 시급한 과제다. 할 일은 태산인데 정치마저 오로지 반(反)기업을 외쳐댄다. 힘부터 모아야 할 때다. 위험수위를 채우고 넘친 물이 끝내 둑을 무너뜨리고 범람하는 상상을 지울 길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