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엔 없는 여름철 ‘냉방병’
한국에 와서 살면서 처음 들어봐
에너지는 언젠가 고갈될 유한자원
후세대 위해 합리적으로 소비해야
2006년 가을 사랑하는 남자를 따라 이곳 한국에 왔다.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했지만 그러한 것들 역시 내게는 새로움과 호기심으로 다가왔던 귀중한 시간이었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유럽에서 주로 생활하던 내게 아시아에 있는 한국은 그야말로 보물섬과 같이 신기한 나라였다.
이탈리아와는 또 다른 한국의 문화를 보며 많은 것을 배워 갈 때쯤 내겐 생소한 습관이 생겼다.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터인가 집을 나서기 전 가벼운 점퍼나 얇은 스웨터를 가지고 다니게 된 것이다. 한국의 여름은 지하철, 버스, 택시 어디를 가더라도 시원한 나라, 아니 조금 시간이 지나면 몸이 ‘으스스’ 추워지는 나라였다.
관공서나 은행 등에서 사람들이 긴소매 옷을 입고, 집집마다 문을 꼭 닫고 그 건물들 밖에서는 뜨거운 바람이 나오는, 또한 내게 있어 처음 들어본 ‘냉방병’이 있는 나라였다. 더운 여름에 어딜 가도 시원한 것이 편리하게 느껴졌지만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의문도 든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이탈리아는 여름은 말 그대로 그냥 여름이다. 한국과 달리 전기요금도 비싸고, 여름습도가 낮은 영향도 있지만 에어컨을 사용하는 일은 한국에 비해 현저히 낮다. 물론 이탈리아에서도 에어컨을 사용하지만 약간의 시원함만 느끼도록 사용하는 게 전부다.
사실 에어컨 사용으로 전력소비가 많은 것을 무조건 나쁘게 얘기할 순 없다. 더위 때문에 일의 능률이 떨어지고 불쾌감을 느끼는 것보다는 적당한 온도로 냉방을 하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다. 하지만 천연가스를 보유하고 있는 이탈리아와 달리 한국은 에너지를 모두 외국에서 비싸게 수입한다고 들었다. 언제든지 편리하고 시원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하기 위해 비싼 유류나 가스를 수입하려면 국가적 부담은 크다.
그러고 보니 최근 에너지 소비절약 캠페인이 활발하다. 서울시가 공무원에게 반바지와 샌들을 포함한 쿨비즈를 반의무적으로 착용하게 했고, 문을 열어놓고 에어컨을 켠 상점에 벌과금을 부과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예전처럼 관공서나 은행에서 추위는 느끼기는 힘들고 적정 실내 온도 유지에 대한 문구를 많이 보게 된다.
사실 이탈리아에는 많은 에너지를 싸고 효율적으로 생산해내는 원자력발전소가 없다. 1980년대 말 이탈리아 국민들이 거부했다. 원자력의 많은 이점에도 불구하고, 후세의 안전함을 위해 지금의 편리함을 포기한 것이다.
하지만 싼 원자력을 포기하고 유럽연합(EU) 내에서 연평균 전기수요의 17%를 수입하던 이탈리아는 2003년 정전사태를 겪으며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됐다. 이후 이탈리아는 무한하면서도 무해한 신재생 및 대체에너지 활용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천연자원인 태양열과 바람을 이용해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이다. 테라스의 꽃 화분처럼 이탈리아 건물 지붕을 장식할 태양전지판을 위한 인센티브 제도가 오래 전부터 시행되고 있다. 싼 원자력을 포기하고 지구 온난화 방지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면서, 이탈리아 전기요금은 한국에 비해 무척 비싸다. 프랑스의 약 배, 스웨덴의 3배 이상이며 유럽 평균치에 60% 이상 높다.
에너지는 언제나 사용할 수 있는 무한한 자원이 아니다. 언젠가는 고갈될 유한 자원이다. 우리가 후세대에게 건강한 지구 환경과 밝은 미래를 물려주려면 지금부터라도 미리 에너지를 합리적으로 소비해야 한다. 우리의 노력이 아직 늦지 않았기를 바란다. 내일은 오늘보다 반드시 나은 세상이 될 것이라 믿는다. “우리 모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