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자본주의의 종말
주주가 자금·정보·규율
제대로 제공 못하는 현실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주주가치 극대화가 기업의 최우선 목표로 등장한 것은 1970년대였다. 주주는 기업경영의 중심에 있으며 이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기업이 추구해야 할 ‘선’이었다. 주주자본주의가 시대를 풍미했던 것은 주주의 역할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주주는 기업에 필요한 핵심적인 자원, 즉 자금, 정보, 그리고 규율을 제공한다. 그런데 주주는 이제 더 이상 적절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는 최신호에서 주주의 역할이 예전만 못하다는 통렬한 비판을 가하면서 주주자본주의시대의 종말을 선언한다. HBR의 비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주주가 기업에 제공해야 할 것은 세 가지. 첫째, 자금이다. 기업의 미래가치를 평가하고, 과감하게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자금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예를 들면, 전문적인 창업투자사 또는 엔젤투자자는 기업의 가치를 심도있게 평가하고 리스크를 지면서 과감하게 투자한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들과 같은 전문적인 투자자의 비중은 줄어들고 주식시장 투자자의 비중이 늘고 있어 주주의 성격이 변하고 있다. 주식투자자들이 기업의 주식을 보유하는 비중은, 미국 기업의 경우 1970~80년대 67%에서 1990년대 이후 86%로 늘었다. 주식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커질수록 기업의 자금 안정성은 낮아진다. 주식투자자의 주식 보유기간은 갈수록 짧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주식투자자의 경우 1950년대 주식 보유기간 평균 7년에서 최근 6개월로 짧아졌다. 보유기간이 단기화할수록 기업의 유동성은 쉽게 위기에 빠질 수 있다.
둘째, 주주는 기업에 정보를 제공한다. 한때 주식시장이 기업의 가치를 합리적으로 평가하고, 가격에 반영한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피셔 블랙은 주식의 90% 이상이 본래 가격의 절반보다 많거나 배보다 적은 범위에서 가격이 매겨진다고 평가했다. 경영자와 이사회에서 시장의 평가를 지침으로 삼아 경영에 반영하기에는 너무 에러가 크다. 새로운 최고경영자(CEO)가 임명되었을 때 시장에서 환영했던(가격이 올랐던) 경우보다 시장에서 부정적으로 평가했던(가격이 내렸던) 기업이 나중에 더 좋은 성과를 보인 것으로 밝혀지는 등 주식시장의 ‘정보기능’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셋째, 주주는 규율을 제공한다. 경영진이 주주의 가치가 아닌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대리인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규율과 감독체제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기업의 지배구조를 보면 어떤 대주주도 기업에 영향을 미치기가 어려울 정도로 주식분포가 광범위하다. 주식 단기보유자들의 규율은 더구나 미미하다. 기관투자자의 이사회 참여 등 경영진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있지만 이 또한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지적이다. 경영진에 규율을 제공하고 감시하며 깊이 관여하기에는 시간도 부족하고 그럴 만한 인센티브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2년 이상 보유하고 있는 주주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한다든지, 보유기간에 비례하는 권한을 준다든지 하는 새로운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에서 재벌의 지배구조가 다시 한 번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대선주자들이 재벌개혁을 최우선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포퓰리즘에 기반을 둔 ‘얼치기 개혁’으로 재벌에도, 국민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재벌개혁이 정서적, 그리고 정치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우리나라 재벌시스템이 갖는 강점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건강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실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외부의 강제에 의한 개혁이 아니라 재벌기업 내부의 자발적 해법찾기, 그리고 기업의 주식을 장기보유하면서 적절한 규율을 요구하고 감시하는 이해관계자의 활약이 동시에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