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벌판에 역사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던 쓸쓸한 모습. 당초 약속된, 시민들이 기대했던 역세권 개발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금 서울 동쪽에 구축하려고 하는 수서 KTX 역사도 같은 악몽이 반복되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오는 2015년 서울 강남구 수서동 일대에 KTX가 개통될 예정이다. 기존에 있던 지하철 3호선과 분당선, 역시 개통 예정인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GTX에다 KTX까지 개통되면 5개 노선이 거쳐가는 서울 동남권의 관문이자 교통의 요충지다.
KTX 수서역 건설사업 시행기관인 국토해양부 산하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는 지난해 6월 수서역세권 복합개발에 대한 청사진을 내놨다. 수서역 일대 38만㎡에 호텔, 백화점, 컨벤션센터 등을 건설해 역에서 내리면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는 ‘역세권의 표본’으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내용으로 사업계획을 수립, 올해 3월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예비타당성 심사까지 통과했다.
복합환승역 개발과 역세권을 동시에 개발하겠다는, 실용적이고 훌륭한 계획. 강남구가 세계적인 도시로 훌쩍 날아오를 수 있는 계기가 되겠다 싶었다. 오고가기 더 편해진 강남, KTX역 주변에 관광 인프라도 충분히 구축돼 관광하기 더 좋아진 강남.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었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내용을 보면 당초 계획과는 다르게 역세권 개발은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나 버리고 말았다. 수서역 일대는 현재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에 묶여 있는 상태다. 개발제한구역에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그린벨트 해제가 선행돼야 한다.
한국시설공단이 지난해 발표한 수서역세권 복합개발계획은 당연히 이 그린벨트 해제가 전제된 이야기였다. 그런데 갑자기 그린벨트 해제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린벨트 관리계획 변경안이 등장했다. 일단 빨리 역사는 지어야겠는데, 그린벨트 ‘해제’를 하기엔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걸리니 빠르고 쉬운 그린벨트 ‘관리계획 변경’안을 택해 일단 역사부터 짓고 보겠다는 심산이다. 철도 이용객과 인근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아무런 기반시설 없이 비닐하우스 벌판 한가운데에 무조건 역사만 지어놓고 개통시키면 된다는 발상이다.
또 광역교통개선대책은 수립되지 않은 채, 개통 날짜에 맞춘 역사 건설만 추진되고 있다. 지금도 수서역 인근의 밤고개길은 성남에서 강남으로 진입하는 차량들로 교통체증이 심각한 상황이다.
개통 날짜를 맞추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국책사업이라면 효율성도 따져보고 주민들의 편의도 고려해 개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일단 역사만 지어놓고 역세권은 나중에 개발해도 된다는 것은 난센스다. 행정력 낭비에 혈세 낭비다. 어떤 일이건 한번 시작할 때 제대로 해내야 한다. “대충 해놓고 나중에 고치면 되지” 하는 안일한 생각이 제2의 KTX 광명역, 유령역의 악몽을 예고하고 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그린벨트를 풀어 제대로 된 역세권을 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