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진영 원로 인사들로 구성된 이른바 ‘원탁회의’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조속한 야권연대 참여를 촉구했다. 공식 출마선언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구체화하고 동행 집단에 대한 검증과 피드백을 활발히 수용하라”는 게 이들의 요구다. 이제는 무대에 올라와 판을 키우며 흥행몰이를 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물론 원탁회의 요구는 안 원장이 계속 머뭇거리면 그들의 대선 전략에 심대한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정파적 이해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안 원장이 어떠한 형태든 거취를 표명해야 한다는 주장은 방향이 맞다.
안 원장이 대선 후보 물망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9월 박원순 변호사에게 야권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양보한 직후로 1년이 거의 지났다. 그러나 그는 대선이 불과 넉 달도 남지 않은 지금까지도 이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다. 우군을 자처하는 진보진영 원로들까지 “돌아설 시점이 지났다”며 결단을 촉구하지만 이번에도 “아직 답할 말이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할 뿐이다. 그가 말하는 ‘답할 때’가 언제인지 모르지만 국민들의 피로감은 점차 깊어지고 있다.
국민과 여론이 입장 표명을 다그치는 것은 국가 지도자로서의 그의 역량을 검증하기 위해서다. 이제 안철수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안철수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아는 국민은 거의 없다. 어쩌면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데 그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게 없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대권행보를 시작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경제민주화와 대학등록금 문제 등 여러 현안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수시로 밝히고 있다. 당내 2차 경선을 치르고 있는 민주당 후보 4명도 각종 미디어와 집회에서 자신의 생각과 정책방향을 제시하고 때로는 격렬한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그런데 가장 유력한 후보라는 안 원장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안 원장에 대한 검증은 시작됐고, 제기된 몇몇 의혹에 대해서는 대변인을 통해 선별적으로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건 검증이 아니다. 대선 후보 자격으로 본인이 직접 나서 국가 경영철학을 말하고, 그의 도덕성을 하나하나 도마 위에 올려야 제대로 된 검증이라 할 수 있다. 한 국가의 지도자를 연예인 인기투표 하듯 뽑을 수는 없는 일이다. 가혹하다고 할 정도의 검증을 거쳐 국민의 선택을 받는 것은 당연한 절차다. 안 원장이 정면에서 검증의 칼날을 받기 싫다면 큰 뜻을 깨끗이 접는 게 정치권과 국민에 대한 예의다. 장고(長考) 끝에는 악수(惡手)가 나오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