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이 미국 법원으로부터 아라미드 섬유에 대한 생산 및 판매 금지 명령을 받았다. 미국의 대표적 화학기업인 듀폰과의 소송에서 패소한 것이다. 삼성전자가 애플과의 스마트폰 특허소송에서 일방적 패소를 한 뒤라 더 충격적이다. 휘청거리는 미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법원과 배심원들이 총대를 멘 것은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설마 미국이 의도적으로 그랬을까만 최근 일련의 사태는 지극히 우려스럽다.
특히 재판장이 듀폰의 소송대리를 맡았던 로펌의 소속 변호사 출신이라는 사실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재판장을 교체해 달라는 코오롱 측의 요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배심원단의 구성에도 문제가 많았다. 재판이 진행된 버지니아 주 리치먼드에는 아라미드 섬유를 생산하는 듀폰의 대규모 공장이 있는데, 현지 주민들로 배심원단을 꾸렸으니 팔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었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생산 판매를 금지한다는 판결도 명백한 월권이다. 해당 국가가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다 하더라도 판결의 파급 효과를 무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그것도 판매 금지 시한을 20년간으로 못박은 것은 사실상 공장 가동을 멈추고 문을 닫으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듀폰에서 근무했던 기술자와 컨설팅 계약을 맺었다는 빌미로 보복을 당한 것이다.
이번에 쟁점이 된 아라미드 섬유는 섭씨 500도의 고열에도 견디는 고강도 첨단물질로 방탄복 등 특수장비 제작에 사용된다. 듀폰은 코오롱이 미국 시장에 진출하자 자신의 영업비밀이 침해당했다는 이유를 내세워 2009년 소송을 제기했고, 이에 따라 지난해 9월에는 코오롱에 대해 1조원의 배상 판결이 내려진 바 있다. 독자적인 기술 개발을 위해 30년간이나 거액을 투자했던 코오롱으로서는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코오롱의 아라미드 제품은 카이스트 팀과의 공동 개발로 만들어진 것이다. 듀폰 사의 제품보다 제조공정과 생산원가를 대폭 줄이면서도 효과가 높은 아라미드 펄프를 세계 세 번째로 개발해낸 것이 1984년의 일이다. 세계적으로 특허를 인정받은 것도 물론이다. 그런 제품에 대해 공장을 폐쇄해야 할 정도의 가혹한 결정이 내려졌으니 불공정 판결이라고밖에 달리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기술 특허에 대한 자국 보호주의 파고는 앞으로 더 거세질 것이다. 무엇보다 원천기술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해 논란의 싹을 잘라야 한다. 아울러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와 적극적인 외교적 대응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