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가 ‘의약품 리베이트 단절’을 선언했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학의학회가 앞으로 약품 처방을 대가로 의사가 제약회사로부터 금품이나 향응을 받지 않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한 것이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나 이제라도 의사들이 자정을 결의한 것은 반갑고 의미있는 일이다. 제약업계 사람들이 아예 병원 문턱도 들어서지 못하도록 하겠다니 의지 또한 여간 단단해 보이지 않는다. 그 이행 여부를 국민들은 기대 속에 예의 주시할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리베이트 관행의 고리를 끊을 좋은 기회다.
누차 지적했듯 의약계 불법 리베이트로 인한 폐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공정한 거래질서와 소비자 보호는 물론 제약산업 발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뿌리를 뽑아야 한다. 무엇보다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전가된다는 점에서 리베이트는 죄질이 나쁜 범죄행위다. 통상 시중 약값의 20~30%는 거품이라는 게 정설로 알려져 있다. 건강보험 재정에 미치는 악영향도 막대하다. 정부가 리베이트를 준 사람과 받은 사람을 함께 처벌하는 쌍벌제를 도입하면서까지 강력하게 나서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그러나 리베이트가 근절은커녕 수법은 날이 갈수록 더 교묘하게 진화되고 있다. 지난달만 해도 대형 제약회사가 의사들에게 법인카드를 빌려주는 형식으로 수십억원의 뒷돈을 건네다 적발됐다. 그만큼 검은 거래의 고질병이 깊다는 것이다. 의사들이 뒤늦게나마 자정 결의를 하고 내부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의구심을 떨치기 어려운 이유다.
의료계는 자정 선언을 하면서 정부의 지나치게 높은 잘못된 약값 정책과 낮은 의료 수가 등으로 병원 경영 자체가 어려운 것이 리베이트 관행을 부추기는 근본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한 개선 없이는 근절이 어렵다는 얘기다. 정부 의료계 제약업계가 참여하는 ‘의산정협의체’를 구성, 이 문제를 논의하자는 제안도 했다.
물론 리베이트 근절이 실효를 거두려면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저지른 잘못된 관행을 제도 탓으로 돌리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자칫 자정 선언이 리베이트 해명 수단으로 비춰져 그 진정성을 흐리게 할 수 있다. 내부적으로 ‘리베이트 수수시 제명’ 등 강력한 제도적 장치 등을 마련, 실천 의지를 거듭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정부와 합리적 논의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순서다. 정부도 함께 고민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