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깊은 산골에 사는 필자 가족은 해마다 설ㆍ추석 등 명절 때면 거대도시 서울로 설레는 외출에 나선다. 보고픈 부모 형제, 친지를 만나러 ‘민족 대이동’ 행렬에 기꺼이 합류한다. 그런데 이 명절 나들이는 늘 당일치기로 끝난다. 이번 설 때도 그랬다.
당일치기 설 나들이는 사실 피곤하고 힘들다. 아직 서슬 퍼런 동장군이 심술을 부리는 새벽녘에 출발하여 한밤에 다시 산골 집으로 돌아오는 강행군을 해야 한다. 그래도 ‘빨리, 집으로!’는 어쩔 수가 없다. 필자와 집사람이 동시에 앓고 있는 어떤 ‘병(?)’ 때문이다.
그 흔한 명절증후군은 결코 아니다. 그럼 혹시 암? 그도 물론 아니다. 굳이 이름을 붙여보자면 일종의 ‘도시기피증’ ‘도시증후군’, 뒤집어 표현하면 ‘전원중독증’ ‘전원집착증’이라고나 할까? 전원에서 살 때는 심신이 평안하고 활력이 넘치지만, 잠시 도시로 나가면 마음이 혼미하고 가슴이 답답하며 머리가 아픈 그런 ‘병 아닌 병’이다.
전원생활을 시작한 지 몇 년이 흐른 지금, 이 병은 거의 고질병이 되어 버렸다. 도시에 발을 내딛는 순간, 숨이 턱 막힌다. 시끄러운 소음과 뿌연 대기, 분주한 사람들과 차량들, 하늘을 가린 빌딩들, 그리고 그 속에서 엮어지는 치열한 경쟁 등 도시의 삶에 대한 내성이 점차 상실된 결과다.
계사년(癸巳年) 들어서도 도시를 떠나 전원으로 향하는 귀농ㆍ귀촌은 시대적 화두다. 자연에서 태어난 인간의 귀소본능과 정부ㆍ지자체의 각종 지원책에 힘입어 2010년부터 시작된 베이비부머(1955~63년생 758만여명) 등 도시인들의 전원행(行)은 더욱 빨라지고 있다.
그러나 ‘느림의 삶’을 얻고자 전원에 발을 내디딘 귀농ㆍ귀촌인 가운데 상당수는 병 아닌 병인 ‘전원(자연)중독증’을 몹시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은 여전히 도시적 가치를 중시하고 도시적 삶의 행태를 내려놓지 않으려고 한다. 특히 ‘돈’에 대한 집착이 그렇다.
주변을 보면, 적지 않은 귀농ㆍ귀촌인들이 억대 부농과 대박의 꿈에 젖어 도시보다도 더욱 치열한 경쟁 속으로 스스로를 내몬다. 느림과 여유, 쉼을 얻고자 시작한 전원생활은 온데간데없고, 고소득 작물 재배와 온라인 홍보 강화 등 돈벌이에 사활을 건다. 그 결과, 과도한 노동과 스트레스가 따르고 되레 건강을 크게 해치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물론 실제 전원생활에 있어 관건은 역시 경제적인 문제다. 가족 구성원이 검소하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는 만큼의 소득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 이상의 추구는 자칫 초심을 흐리게 하고 결국 부정적인 결과만 남긴 채 끝날 수도 있다.
진정한 전원인이 되려면 도시의 돈과 명예 등은 내려놓고 자연이 주는 풍요와 평화로움, 안식과 유익을 제대로 누릴 줄 알아야 한다. 귀농이든 귀촌이든 전원생활은 자발적인 가난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전원생활은 도시를 비워내고 자연을 채워가는 과정이다. 전원중독증은 그 과정에서 맞게 되는 유쾌한(?) 고질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