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정책을 입안하고 결정, 집행하는 전 과정에서 소비자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경우 배상 또는 보상 절차를 간소화하고 전반적인 감독 프로세스를 소비자 친화적으로 바꿔야 한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금융권의 화두는 단연 ‘소비자 보호’다.
금융위기 이후 일부 금융권의 탐욕적 행태가 사회적 지탄 대상이 된 데다, 때마침 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를 화두로 내걸며 민생 경제 활성화를 통한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한 마당이다.
이에 발맞춰 시중은행들은 앞다퉈 소비자보호 기구를 강화하거나 신설하고, 소비자보호에 관한 헌장을 제정하는 등 고객중심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 은행 임원은 “소비자 보호는 이제 은행경영의 핵심과제로 자리 잡았다”면서 “고객 중심이라는 말이 빠지면 임원회의가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할 정도다.
정치권과 금융당국에서도 서민금융지원 방안과 함께 다양한 소비자 보호 대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소비자보호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금융감독원을 건전성 감독기구와 영업행위 감독기구로 분리하는 방안이나 고객정보보호를 위해 보험권의 해묵은 과제였던 고객정보 일원화 작업을 추진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키코(KIKO)와 저축은행 사태 등에 따른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금융소비자 입장에서는 이보다 반가운 일이 없다.
그러나 소비자를 보호하겠다는 민관의 이 같은 의지와, 달라진 제도적 장치가 얼마만큼의 실효성을 갖추느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특히 최근 추진되고 있는 제도적 대안들이 대부분 하드웨어 측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사석에서 만난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제도를 바꾸려면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 측면에 초점을 맞춰야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데 지금은 ‘일단 바꿔보자’는 분위기만 팽배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을 이원화하는 문제는 비용부담은 둘째 치고 이중 규제에 따른 정책 혼선이 불 보듯 뻔하다. 보험권의 고객정보 일원화 역시 기왕에 구축된 정보시스템 활용법이나 정보를 한 기관으로 몰아줄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 등이 적지 않지만 당국이 이 같은 부작용까지 종합 고려한다는 얘기는 잘 들리지 않는다.
소비자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외관상의 변화가 아닐 것이다. 감독정책을 입안하고 결정, 집행하는 전 과정에서 소비자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적 틀도 중요하지만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경우 피해배상 또는 보상 절차를 간소화하고 해당 회사를 일벌백계하는 등 전반적인 감독 프로세스를 소비자 친화적으로 바꿔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금융소비자를 보호대상으로만 여기는 인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보호’라는 단어 속에는 마치 금융기관이 소비자에게 시혜를 주는 듯한 인상이 짙게 배어 있다. 금융소비자는 금융회사와 대등한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소비주권을 행사하는 당당한 주체인데도 말이다.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거창한 구호 아래 피상적인 대책을 쏟아내기보다는 소비자 편에서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금융소비자의 권익을 실질적으로 제고할 수 있는 변화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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