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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 황해창> 담대한 인사기구 만들자
미국의 경우 고위직 사전검증은 FBI(연방수사국)가 맡는다. 수년 전 살던 동네에 찾아가 평판까지 탐문한다. 세무조사는 기본이다. 이런 1차 관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청문회에 나설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인선작업이 난항이다. 첫 국무총리 지명부터 불발이더니 후속 인선이 쉽지 않은 모양새다. 워낙 비밀스러워 그 내력조차 알 길 없다. 1차, 2차 차수를 정한 것도 특이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때문일 것이다.

엊그제 발표한 6명의 장관 후보자 중 일부가 또 재산증식과 병역면제로 구설에 오르내린다. 전국 산간 곳곳에 고르고 알차게 임야를 사들인 경우도 또 보인다. 취재전선을 다시 달굴 요소들이다.

박 당선인은 김용준 총리 후보자가 청문회 직전에 자진사퇴하자 언론과 야당을 싸잡아 ‘신상털기’라며 불만을 표출했다. 또 미국식 인사청문회를 부러워하기까지 했다. 수긍 못할 바는 아니나 그렇다고 미국식을 따르자는 데는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인사검증으로 따지면 미국만큼 엄격한 곳도 없다. 독립기구인 인사처 성격의 OPM(The Office of Personnel Management)이란 게 있고, 그 아래 연방조사국(Federal Investigative Services)이 있다. 추상같은 인사 검증이 생명이다. 직급과 무관하게 전체 공직자의 90%, 한 해 200만명 이상의 신상을 검증하고 정보를 세밀하게 축적한다. 저인망식이다. 추가 자료가 필요하면 강도를 더 높인다. 고위직 사전검증은 FBI(연방수사국)가 맡는다. 수년 전 살던 동네에 찾아가 평판까지 탐문한다. 세무조사는 기본이다. 이런 1차 관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청문회에 나설 수 있다.

검증을 미국식으로 스크린(screen)이라고 한다. 그러나 미국에선 인사검증만큼은 베팅(vetting)이란 용어를 더 선호한다. 액면 그대로 쥐 잡듯 한다는 의미로 스크린과는 농도가 다르다. 미국식 인사검증의 밀도를 짐작할 만하다.

이런 시스템이 없다보니 언론이 나서고 경우에 따라서는 인격모독까지 서슴없이 이뤄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예컨대 병역면제를 위해 고의 감량한 팩트를 병무청은 까맣게 모르지만 언론은 늦게라도 알게 된다. 제보에다 탐문취재의 결과다. 이런 장외 필터링마저 없다면 그 작자는 100% 청문회 무사통과다. 과연 이게 옳은 일인가.

물론 소리 소문도 없이 공적검증이 신뢰 있게 이뤄진다면 더할 나위 없다. 취재일선도 그다지 야단스럽지 않게 되고 야당은 덮어놓고 별난 기사를 마구 들이대지도 않게 될 것이다. 문제는 그런 시스템을 언제 갖추겠느냐는 것이다. 미국 인사청문회는 22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축적된 인사파일은 오늘날 최강 미국의 주춧돌이나 다름없다.

지금 청와대 민정수석실에는 5만여 명의 인사파일과 200여 개의 재산 및 이력 조회용 체크리스트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도 그 전 정부 시절 인사위원회에서 해 놓은 것인데 이명박 정부가 대뜸 그 위원회를 없애 맥이 끊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이제부터라도 노력한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새 정부가 인사위원회를 복원한 것은 잘한 일이다. 다만 그 역할이 권력 주변 관리에 머물지 않고 미래지향적인 인적관리 시스템으로 확대발전해 나갈지는 의문이다. 이번에 아예 국가 차원의 담대한 독립 인사기관을 설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시간이 갈수록 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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