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경제위기 그림자 여전
물가중심 통화정책 탈피
지준율·양적완화정책과 결합
거시경제 안정적 운영 접근을
현행 한국의 통화정책 운영체계는 물가안정 목표제로 한국은행은 정부와 협의해 명시적인 물가안정 목표를 3년 단위로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매월 정책금리를 결정하고 정책수단 등을 활용해 콜금리가 정책금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유도하는 금리중심의 통화정책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동성 증가와 함께 거시경제의 안정성 측면에서 물가안정 목표제의 유효성이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정책금리가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금리 파급경로를 왜곡시켰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2008년 리먼 사태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국제 금융시장이 극도로 불안정해지면서 선진국 경기를 빠르게 악화시킴은 물론, 신흥시장국 금융 및 실물경제의 동반 침체를 초래했다. 미국ㆍ유럽 등 선진국들의 적극적인 정책 대응 및 글로벌 정책 공조로 인해 제2의 대공황은 모면했으나, 과거 침체기에 비해 장기추세로의 회복이 더딘 가운데 유럽은 국가채무비율이 크게 상승하면서 일부 남유럽국가들을 중심으로 재정위기로 전이됐다.
현재 경제 상황을 보면 글로벌 금융위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재발된 유럽 재정위기로 인해 세계경제에 다시 나타난 ‘R(Recessionㆍ경기침체)의 공포’ 가 다소 수그러드는 양상이지만 먹구름은 곳곳에 두텁게 드리워져 있다. 여전히 상존하는 미국의 재정 긴축, EU권 국가의 추가적 재정위기 가능성 등 대외 악재들은 세계경제의 저성장ㆍ저물가 국면 진입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어, 우리 경제도 부채 디플레이션으로 인한 ‘D(Deflationㆍ디플레이션)의 공포’까지 걱정할 지경이 됐다.
이와 같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세계경제의 전반적 기조가 고성장ㆍ고물가의 국면에서 저성장ㆍ저물가의 국면으로 확연히 바뀌었다. 따라서 새롭게 바뀐 경제기조 아래서는 기존 통화정책의 고수보다는 새로운 환경에 맞는 통화정책의 보완이 필요하다. 또한 금융위기 이후에는 다양한 금융안정 및 재정정책 수단이 활용되면서 통화정책이 여타 정책목표와 어떻게 조화롭게 운영될 수 있을지에 대한 검토가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새로운 경제환경에 걸맞은 ‘뉴 노멀’의 통화정책은 우선적으로 금리 정상화 등 물가만을 생각하는 통화정책을 지양해야 한다. 물가상승에만 매몰돼 급작스럽게 금리인상을 단행하면 실질생산이 급격히 후퇴해 잠재성장률과 갭이 더욱 벌어지고 금융 불안정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음을 사전에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그러므로 물가상승 압력은 반드시 선제적 금리인상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실기했다고 비판하고, 실물경제 등을 고려해 금리인상 속도를 조절하는 것을 반개혁적으로 보는 기존의 일부 시각도 변해야 한다.
또한 거시경제 환경 변화에 따라 물가안정, 재정정책과의 조화, 거시건전성 등 여러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서는 금리정책 하나만으로는 통화정책의 예측 가능성과 신뢰성이 저하되는 등 제약이 많으므로 정책조합(policy mix)이 필요하다. 재정정책은 물가뿐만 아니라 거시건전성에도 영향을 주므로 금융안정까지 고려한 다양한 정책조합을 고려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신용, 자산가격 등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내유동성 관련 정책으로 지준율, 유동성갭, 양적완화(QE), 부동산 관련 LTV와 DTI 규제 등과 해외 유동성 관련 정책으로는 거시건전성 부담금(bank levy), 환율변동성을 줄이는 정책 등을 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경제는 기대심리에 의해 상당히 좌우되므로 통화정책도 시장의 신뢰를 얻어야 정책효과가 커진다. 통화당국은 정책의 투명성 강화로 시장의 기대 왜곡을 최소화하여 정책의 신뢰성을 제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우려되는 통화정책에 대한 신뢰성 상실과 유효성 저하를 막기 위해서라도 한은총재는 물론 금통위원들도 시장과의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