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 미술비평가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다는 산골에 사는 노부부의 모습을 다룬 텔레비전 프로그램를 봤다. 어르신들은 산골이긴 하지만 전기가 들어오는 곳에서 아주 소박한 일상을 꾸려가고 있었다. 할머니는 “한 달 생활비가 20만원도 안 된다”며 배시시 웃으셨다. 흥미로운 것은 텔레비전을 보는 모습이었다. 할머니가 텔레비전을 켜자 할아버지는 곧바로 방의 형광등을 껐다. “촬영팀이 와 있으니 형광등을 켜자”는 할머니 말에 어쩔 수 없이 텔레비전과 형광등 모두를 켜놓아야 하는 상황이 되자, 할아버지는 슬그머니 방문을 나섰다. 그리고는 밖에 설치돼 있는 계량기 앞에 서서 돌아가는 계량기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것이었다. 할아버지의 원칙은 이랬다. 냉장고를 제외한 전기용품은 단 한 가지만 사용할 것. 즉 TV를 보면 형광등을 켤 수 없고, 형광등을 켜면 다른 가전제품은 모두 꺼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할아버지, 할머니는 더없이 알뜰하게 살고 계셨다.
올 겨울 내내, 나는 이 ‘전기에너지’에 무척 신경이 쓰였다. 신나게 TV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자막으로 ‘전력수급 비상’이라는 경고 글귀가 뜨면 불안감에 가전제품을 모두 끄곤 했다. 우체통에는 전기를 아껴야 한다는 내용의 전단지가 매월 꽂혀 있었다. 가뜩이나 전기가 부족한데 원전도 불안한 상태라 하고, 전기요금이 오른다 하니 마음은 더 팍팍해졌다. 게다가 새로 바뀌는 요금제도는 전기를 많이 쓸수록 요금이 싸지는 방식이란다. 이건 대체 무슨 소린가 싶었다.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그렇게 아껴봐야 티도 안 나. 대형업체서 팡팡 써대는 거 봐. 다 소용없다고.”
독일에서 건축일을 하고 있는 동생이 잠시 집에 돌아왔다. 부산 해운대에 다녀온 동생은 빼곡한 유리건물들이 너무 많아 놀랐다는 말을 했다. 서울시청도 그렇고 광화문 일대에도 언제 그렇게 많은 유리건물이 들어섰냐며, 싼 유리를 써서 에너지 효율이 안 좋아 보인다고 했다. 독일의 경우, 건물을 지을 때 그 건물 유지에 필요한 에너지 소비량이 법적으로 제한돼 있어 에너지 효율을 고려한 설계가 필수라고 했다. 유리건물을 짓고 싶으면, 그만큼 에너지 효율이 높은 유리를 사용해야 하는데, 그게 워낙 고가인지라 쉽게 쓰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했다. 입으로만 에너지 절약을 이야기할 게 아니라, 근본적이고 일관된 정책을 바탕으로 에너지를 다루는 태도가 우리에게는 결여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해 전 천경우라는 작가가 독일 브레멘에서 비가시적인 에너지 네트워크를 돌아보는 예술 프로젝트를 했다. 전기와 가스 등 도시의 에너지 배관공사 현장에서 그 배관에 에너지 노동자들의 꿈을 담은 텍스트를 부착한 다음 땅에 묻는 작업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에 대한 성찰을 담은 것이었다. 인류 역사의 초기부터 존재했던 개념인 에너지는 우주의 원리이자 생명의 근본이다. 우리는 그 힘을 잠시 빌려 쓰는 것일 뿐, 그 원리에 역행한다면 위험에 빠질 텐데, 지금이야말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힘, 에너지에 대한 존경과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