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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스펙’ 사라지는 반가운 취업 트렌드
취업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그동안 ‘성공 취업’의 필수조건으로 당연시되던 이른바 스펙(SPEC)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달 들어 10대 그룹을 비롯한 기업들의 대졸사원 공채가 시작되면서 이러한 추세는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각 기업은 스펙보다는 독자적 채용 기준을 만들어 이를 토대로 인재를 뽑는 분위기다. 판에 박힌 신언서판(身言書判)적 판단이 아니라 직무를 수행할 실제 능력을 평가하는 실사구시(實事求是)적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 핵심은 일단 ‘끼와 인성’으로 요약된다. 끼는 글로벌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성과 열정 그리고 도전정신이며, 인성은 조직 내 융합과 리더십이라 할 수 있다. 어학성적과 학점, 각종 자격증, 해외 연수와 봉사, 인턴십 수료 등 천편일률적인 스펙만으로는 도저히 판별할 수 없는 것들이다.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도 이러한 끼와 인성은 스펙 속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절감했을 것이다. 화려한 스펙으로 입사했지만 조직에 적응하지 못해 뒤처지는 ‘나약한 인재’도 수없이 봤을 것이다. 기업의 인재 선발 방식이 달라지는 것은 시대적 흐름이며 당연한 수순이다.

스펙의 함정에서 벗어난 기업의 인재 선발 방식이 다양해지는 것도 반가운 일이다. 가령 SK그룹의 경우 어학점수나 학점은 아예 심사기준에서 배제했다. 대신 합숙면접을 통해 통합적인 문제 해결 능력과 실행력을 검증하는 방식을 택했다. 삼성그룹은 개인의 기본 자질인 인성을 중점적으로 보겠다는 게 기본 방침이며, 현대자동차는 지방인재 채용에 무게를 두고 있다. 스펙에 가려 끼와 재능을 가진 인재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기업체에서 그동안 예비취업자들에게 어학능력과 학점 등의 스펙을 요구했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대학 4년간 자기 발전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진지하게 고민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스펙이 취업을 위한 필수요소처럼 변질돼 본래의 취지가 퇴색해 버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뒤따르는 부작용도 컸다. 입사 지원서에 스펙 한 줄을 넣기 위해 한 사람당 평균 4300만원이나 돈을 들이는 판이다. 졸업을 미루는 바람에 대학 5학년, 6학년도 수두룩하다. 국가적 차원의 인적 물적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진정성 있는 활동 경력마저 무시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스펙이 아닌 능력 중심의 채용문화가 정착되면 우리의 청년문화도 건강하게 진화할 것이다. 기업들이 더 고민하고 노력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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