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곳곳에서 부는 힐링열풍
근본적 원인 해결책은 못돼
사회구성원 꿈·희망 키우는
정책결정·사회주도층 노력 필요
국민행복시대가 되도록 하겠다고 한다. 이 정치 슬로건은 ‘현재 행복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생계 때문에 엄마를 일터에 보낸 뒤 아가방이나 유아원에 맡겨진 아이는 모든 것을 다 들어주는 부모의 손길이 아쉽다. 유아원 생활 잘하던 아이가 유독 엄마 앞에서 심한 투정을 부리는 것은 그 나름의 힐링(healing) 방식이다. 대학입시가 인생 등급의 중요한 바로미터가 되는 풍토라고 여긴 청소년들이 문제풀이에 여념이 없다. 어떤 청소년은 지레 회복할 수 없는 수준이라 여기고는 자포자기한다.
가고 싶은 직장에 가려니 문이 좁고, 하고 싶은 일을 하자니 돈이 없다. 점수 몇 점 차로 괜찮은 직장에서 밀리면 삶의 질이 달라진다는 것을 뻔히 알기에 취업재수를 해보는데, 주변에선 ‘눈높이를 낮추라’고 한다. 내 수준에 맞췄다고 생각해 평판도 낮은 직업을 택했더니, 이번엔 ‘젊은 놈이 꿈이 없다’ 한다.
학부모가 되어 내 아이 기죽을까봐 명품 사주고, 뒤처질까봐 여러 학원에 보내는데, 아이는 아이대로 힘들다 하고 부모는 부모대로 ‘내 인생은 대체 뭔지’ 하며 허탈해한다. 노후준비도 안 돼 있는데, 곧 은퇴다. 정년이라도 악착같이 채우려 버티니 아쉬운 쪽은 나요, 사장은 꽃놀이패로 나의 굴종을 즐기는 것 같다. 퇴직 후 연금만으로 행복은커녕 겨우 입에 풀칠을 한다.
대한민국 평균 시민의 삶은 고단해 보인다. 그래서 행복의 예비단계로서, 불행한 심리를 치유하는 힐링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작년 10월 리얼미터 조사결과 51.7%가 ‘힐링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요즘 발에 차이는 게 ‘힐링’이다. 툭하면 ‘멘붕’을 호소하고, 힐링해야 한단다. 힐링센터가 난립하고, 힐링뷰티, 힐링워킹, 힐링관광, 힐링아파트까지 등장했다. 기업규제 힐링센터가 생기는가 하면, 전통축제 슬로건조차 ‘힐링’이다. 이러다 ‘구급약’이어야 할 힐링은 상비약이 될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힐링의 피로감을 힐링하는 프로그램까지 생길라. 과도한 힐링 열풍은 온 나라를 ‘엄살공화국’으로 만들 수도 있다. 과연 우리는 그토록 불행한가.
힐링이 필요한 요인들을 따져보면 그 속에는, 당연히 해야 할 일, 꿈과 목표 성취를 위한 노력, 방종의 제어, 공동체 약속 등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부딪치는 심신의 고통도 포함돼 있을지 모른다. 힐링 대상에서 뺄 것들이다.
이젠 ‘콜링(calling)’도 힐링만큼 생각해볼 때다. 콜링은 사명, 임무, 천직, 소명, 신의 부름, 적당한 직업 등을 뜻한다. 저 할 일 하는 과정에서 치르는 애환은 꿈, 희망, 의지, 소명의식으로 융해시킬 일이지, 치료할 일은 아니다.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는 12세 때 선생님으로부터 “말썽쟁이 넌 절대 성공할 수 없어”라는 비수 같은 충고를 들었다. 그는 더욱 열심히 운동해 6년 뒤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 알리는 “세계 제일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든 분이 그 선생님이었다”고 회고했다. 청소년을 빗나가게 하는 ‘악담’일 수도 있었지만, 알리 마음속 꿈과 노력이 그를 지켜주었던 것이다. 서태지는 ‘고교 자퇴서’라는 글을 통해 “자신의 행복은 자신의 책임이다. 대책 없는 미래에 대한 넋두리를 닥치라”고 적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도전과 정진은 한국 대중문화를 바꿔놓았다. 최근 ‘꿈꾸는 자는 멈추지 않는다’는 책을 펴낸 전성철 IGM세계경영연구원 대표도 “몸은 심장이 멎을 때 죽지만, 영혼은 꿈을 잃을 때 죽는다”면서 도전의식을 강조한다.
힐링은 멘토의 일시적 치료행위인 데 비해, 콜링은 내 몸에 뿌리내린 내성체라는 점에서 강하다. 피로, 스트레스, 불안감의 백신은 꿈이다. 사회구성원들의 꿈과 희망을 키우는 일은 정책결정자와 사회주도층이 교육, 경제, 고용, 문화, 복지 등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치밀하게 도와야 한다. 꿈을 심는 나라. 그것이 바로 국민행복 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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