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화한 경제위기에 고령화, 양극화, 실업, 환경문제 등이 겹치면서 우리는 대변혁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고성장시대 삶의 방식과 태도를 고집하고 있는 건 아닐까. 저성장은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역대 대통령은 경기부양을 시도했다. 취임 초기에는 더 간절했다. 유권자의 선택이 끝난 직후, 선거과정에서 쏟아져 나온 국민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도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지금도 이런 상황이다. 더욱이 세계 각국 지도자들은 요즘 경기부양 카드를 속속 꺼내고 있다. 성장동력이 급격하게 떨어진 상황에서 지도자들의 ‘믿을맨’은 확대재정과 통화팽창이 거의 유일한 수단이란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분석이다.
박근혜 시대의 경제상황을 살펴보자. 신성장 동력이 성과를 내려면 아직 멀었다. ‘창조경제’는 우리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박근혜 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워진 성장과 복지의 두 바퀴를 굴려야 한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쉬워 보이지 않는다. 역사가 보여주듯 역대 정권의 경기부양책은 심각한 후유증을 낳았다. 모순과 부작용에다 실책이 어우러지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는커녕 국민의 호된 질타를 받았다.
노태우 정권은 경기 후퇴 국면에 접어들었을 때 지휘봉을 이어받았다. 200만가구 주택 건설로 ‘부동산 투기 억제와 경기부양’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했다. 결과는 ‘강남불패’ 신화의 탄생이었다. 추락하던 증시를 상대로 싸움을 벌이다 결국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김대중 정부는 정권 초기 외환위기를 수습하느라 경기부양책을 꺼낼 수 없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극복을 선언한 뒤 내수 진작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때뿐이었다. 정보기술(IT) 버블은 순식간에 꺼졌고, 플라스틱(신용카드) 버블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어서 정권을 거머쥔 참여정부는 카드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실책의 ‘대물림’이다.
이명박 정부는 747(7% 성장, 4만달러 국민소득, 7대 경제강국) 공약에 맞춰 강력한 성장 드라이브 정책을 펼쳤다. 경기부양을 위한 핵심 수단은 ‘감세’.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앞에서 이명박 정부의 747 공약은 날개가 꺾이고 만다. 한번 식기 시작한 경기는 좀체 되살아나지 않았다. ‘저성장’ 시대는 소리 없이 빠르게 우리 곁에 찾아왔다.
저성장 시대를 맞아 대규모 경기부양책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통화정책은 여지가 있어 보이지만, 유동성 함정에 빠지면서 마찬가지 상황이 됐다. 게다가 금리인하에 따른 물가상승 가능성은 서민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 뿐이다.
박근혜 정부는 정권 초반 경기부양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후보자는 추경을 얘기하고 있다. 7분기 연속 0%대 성장률 앞에서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재원조달 방도가 마땅치 않다. 세계잉여금이 마이너스인데다 공약이행 재원조달이 더 급하다. 결국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데, 나라 곳간을 생각하면 한 번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경기부양에 앞서 저성장 시대에 살아가는 법을 찾는 건 어떨까. 일상화한 경제위기에 고령화, 양극화, 실업, 환경문제 등이 겹치면서 우리는 대변혁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고성장시대 삶의 방식과 태도를 고집하고 있는 건 아닐까. 저성장은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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