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면서 민주화운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 세대. 1990년대 30대가 되어 사회에 본격 진출하면서 컴퓨터 CPU(중앙처리장치)에 빗대 386세대(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란 칭호를 얻었고, 2000년대 40대로 성장해 486세대가 되었으며 이제 50대를 맞으면서 586을 바라보는 세대. 4.19세대, 유신세대에 이어 한국현대사의 한 획을 긋는 세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다고 컴퓨터 CPU의 성능이 향상되지 않듯이, 나이를 먹는다고 486세대가 586세대로 진화하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는 성찰과 변화가 수반되지 않으면, 이들이 애초 386세대의 희망이었던 사회진보를 가로막는 기득권층으로 전락할 수 있다. 최근 야권의 486 정치인들이 계파모임인 ‘진보행동’을 해체한다고 선언한 것이 어떤 변화의 출발점이 될지 주목되는 이유다.
1980년대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순수한 열정이 분출했던 시대다. 산업화의 주역이지만 인간적인 대접을 받지 못하던 소외계층에 대한 애정이 넘쳤고, 민주화를 위해 몸을 던지는 벗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당시엔 기존 지배세력에 대한 저항과 반대만으로 자신의 정당성이 인정됐다. 언론이 통제되고 군사정권에 대한 비판이 봉쇄된 상황에서 이를 대변할 세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980~90년대 경제 급성장과 함께 민주화가 이뤄지고, 사회구조가 바뀌면서 기존질서에 대한 부정만으로는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려워졌다. 특히 근로자들의 임금인상과 화이트칼라가 등장하면서 이른바 ‘사회구성체’가 바뀌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소수의 기득권층과 대다수 민중으로 나뉘어져 있던 사회에 중산층이 들어서면서 사회의 분화가 빠르게 진행된 것이다.
사회구조가 바뀌면 대응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1980년대식 부정의 정치에서 2000년대식 긍정의 정치로, 비판의 정치에서 대안의 정치로, 이념의 정치에서 생활의 정치로 바뀌어야 한다. 노무현 정부가 명쾌한 대안이나 그것이 가져올 희망을 제공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제기를 하다 국민적 피로감을 누적시키면서 개혁에 실패한 것은 그 패러다임 변화를 읽지 못한 결과였다.
우상호 민주통합당 의원의 말처럼 학생운동의 인연을 중심으로 한 모임은 친목단체로서는 가능하지만, 정파로선 지속성을 갖기는 힘들다. 사회의 분화에 따라 이들이 분화할 수밖에 없고, 그것을 하나의 목소리로 통합시키려다 보면 계파논리의 틀에 갖힐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새로운 가치와 정책을 모색하고, 그에 공감하는 세력을 넓혀나가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존 정치의 틀을 벗어난 참신한 아이디어와 이를 실천하고 성공시키는 경험이다. 386세대부터 키워온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나 부채의식에서도 벗어날 필요가 있다. 정치권력 지형의 변화나 시스템의 변화를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엔 한계가 있다는 것은 이미 증명됐다. 사회주의가 실패한 것도 혁명 이후의 삶의 방식에 대한 구체성이 없었기 때문 아니었는가.
486이 보다 자유로운 개인으로 돌아와 작더라도 바른 정치, 희망을 주는 정치의 성공 사례를 만들 때 586으로 진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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