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는 한마디로 ‘가벼운 창업’의 시대다. 1985년 필자가 메디슨을 창업했을 때는 의료용 모니터, 평면 키보드도 외부에서 만들어줄 데가 없어 직접 만들었다. 메디슨 창업팀의 핵심 역량은 디지털 초음파기술인데, 대부분의 돈과 시간은 비핵심 기술을 구현하는데 투입됐다. 기술 개발 이후엔 생산과 영업과 서비스와 관리를 해야 한다.
과거 창업자는 연구ㆍ개발, 생산, 품질, 유통, 서비스, 관리 등 모든 분야의 팔방미인이 돼야 했다. 개발과 생산설비에 상당한 투자도 필요했다. 한마디로 ‘무거운 창업’이었다. 일단 창업을 하면 후퇴는 죽음이기에 목숨 걸고 사업에 도전했다. 그리고 많은 기업가들이 장렬하게 전사했다. 과거의 창업은 이렇게 무거웠다.
미국 실리콘밸리 창업 활성화의 비밀은 생태계 중심의이런 가벼운 창업이다. 스탠퍼드대 학생이라면 누구나 창업을 꿈꿔본다. 창업이 즐겁고 쉽다. 기업가정신 교육은 기본 교과과정이다. 아이디어가 있으면 테크숍을 활용해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견본시장(kickstarter.com)에 올리면 수요자들이 사전 구매에 응한다. 혁신을 대중 해결(social innovation)하는 쿼키(quirky.com)란 서비스도 등장했다.
특허를 거래하는 서비스도 다양하다. 사업에 필요한 각종 자문을 제공하는 지식서비스 기업들이 경쟁하고 있다. 이노센티브(innocentive.com)와 9시그마(ninesigma.com)는 기술중개로 고속 성장하고 있다. 성공적인 사업을 소개하는 테크크런치(techcrunch.com)와 같은 전문 미디어가 있다. 엔젤투자를 회수하는 인수ㆍ합병(M&A)시장은 이미 나스닥 규모의 5배 이상이다.실리콘밸리의 혁신역량은 단일기업의 역량이 아니라 혁신생태계의 역량인 것이다.
결국 차별화된 아이디어가 있으면 사업화가 가능한 다양한 생태계가 구축된 실리콘 밸리에서는 이처럼 가벼운 창업이 가능하게 됐다.
한국의 대학생 중 벤처창업을 꿈꾸는 비중은 3% 미만이다. 2000년 이 비율은 50%에 달했다. 그랬던 한국의 건아들은 이제 안전한 공공기관과 대기업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기 위해 해외 어학연수를 떠난다. 창업선배들의 장렬한 전사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진 결과다.
그런데 해외 어학연수 비용 규모로 가벼운 창업이 가능하다면 문제는 완전히 달라진다. 창업에 성공하면 대박이다. 그런데 실패해도 어학연수보다는 스펙에 도움이 된다. 대기업 취업 담당자의 말이다. 어학연수보다 큰 투자가 필요한 해외 유학비용이라면 이제 웬만한 창업은 당연히 가능해지고 있다. 바로 혁신생태계가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핵심역량에 집중하면 나머지는 외부에서 전략적 제휴 혹은 아웃소싱으로 조달이 가능해졌다. 생태계 기반의 가벼운 창업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카카오게임의 강자들인 애니팡, 드래곤플라이트는 아주 작은 기업이다. 창업 부담이 과거에 비해 10분의 1 이하로 가벼워진 것이다. 이제는 목숨걸고 창업하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창업을 하는 시대가 돼야 한다. 이는 청년창업을 활성화하는 현실적인 정책 방향이다.
전세계 기업가정신을 비교한 GEM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지식서비스산업은 OECD 국가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지식서비스 산업의 육성은 가벼운 창업을 위한 본질적인 요소다. 가벼운 창업을 위해 실패해도 재도전이 가능해야 한다. 연대보증 문제 해결과 더불어 엔젤투자 확산이 필요한 이유다. 창업투자를 위한 엔젤생태계는 미국에 비하면 고작 600분의 1 정도다. 2000년 5000억이 넘던 엔젤투자의 급격한 축소는 투자회수시장의 부재의 결과다.
엔젤은 천사가 아니라 수익을 추구한다. 이들이 돈을 벌게 해줘야 한다. 미국의 엔젤투자가는 성공한 벤처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엔젤에 투자하면 현금을 회수할 때까지 과세를 이연해 주기에 투자는 계속 선순환된다. 투자 손실을 공제한 수익에 과세하는 것은 물론이다. 창업 생태계 육성이란 참여자들이 수익을 낼 수 있게 해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가벼운 창업 활성화가 제2 한강의 기적을 만드는 창조경제의 씨앗이다.”
<카이스트 초빙교수,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 한국디지털병원 수출사업협동조합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