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미원자력협정 개정을 위한 본 협상이 조만간 열릴 전망이다. 내년 3월 만료 시한을 앞둔 이 협정은 지난 2년 동안 다섯 차례 협상을 열었지만 결론은 내지 못한 상태다. 우리의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와 농축 우라늄 생산에 대한 미국의 허용 여부가 핵심 쟁점이다. 지난 1974년 개정된 이 협정에는 ‘사용 후 핵연료의 형질을 변경하거나 다른 용도로 쓸 때는 미국의 동의를 받는다’고 못을 박아놓았다. 이 족쇄를 이번에는 반드시 풀자는 것이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는 세계 5위권의 원자력 강국이다. 운영 중인 원자력 발전소가 20여기에 이르며 아랍에미리트(UAE)에 원전을 짓는 등 수출도 활발하다. 한국형 원전은 핵심 성장동력으로 키워야 할 분야다. 그런데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도 마음대로 못한다면 절름발이 원자력 강국일 뿐이다. 그렇다고 기술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다 쓴 핵연료를 안전하게 재처리하는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도 사용한 핵연료는 모두 버리고 비싼 달러를 들여 새 연료를 사오고 있다. 그 비용도 엄청나지만 매년 쏟아져 나오는 핵연료를 버리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각 원전 저장소는 이미 가득 쌓여 3, 4년 뒤면 보관할 곳도 없다. 재처리가 가능하게 되면 모두 해결될 문제다.
물론 미국은 여전히 단호한 입장이다. 핵 확산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더 이상 우리의 핵주권 발목을 잡을 명분이 못 된다. 지난 40년간 우리는 핵을 평화적으로 사용했고, 특별히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일도 없었다. 2년 전에는 서울에서 핵안보 정상회담이 열릴 정도로 국제사회에서의 신뢰도 높다. 무엇보다 달라진 한국의 위상에 지금의 협정 내용은 걸맞지 않다. 더욱이 우리와 처지가 비슷한 일본은 이미 1988년 미ㆍ일원자력 협정을 고쳐 핵연료를 재처리해 사용하고 있다. 최소한 일본 정도의 수준으로 협정을 개정해야 한다. 정부는 이번 협상에서 밀리면 차라리 협정을 파기할 수도 있다는 배수진을 치는 확고한 의지로 협상에 임하기 바란다. 미국도 이제 전향적 자세를 보일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