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달은 당시 가장 뛰어난 석공이었다. 탑을 만들기를 몇 해. 자나 깨나 남편을 기다리던 아사녀는 기다리다 못해 불국사로 찾아온다. 하지만 탑이 완성되기 전에 남편을 만날 수는 없었다. 먼발치에서 남편이라도 보고픈 마음에 불국사 앞을 서성이던 아사녀에서 한 스님이 말한다. “자그마한 못이 있는데, 지성으로 빈다면 공사가 끝나는대로 탑의 그림자가 못에 비칠 것”이라고. 하지만 탑의 그림자는 떠오르지 않고, 아사녀는 결국 못에 몸을 던진다. 후대 사람은 그 못을 영지(影池), 끝내 그림자를 비추지 않은 탑을 무영탑이라고 한다.
현진건이 석가탑 창건 설화를 복원한 ‘무영탑’의 줄거리다.
한국 사람들은 중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을 통해 처음으로 석가탑을 마주하게 된다. 그 나이쯤엔 화려한 다보탑이 눈에 더 들어오지만 나이가 들면 다른 듯하다.
한국의 대표적 미술사학가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도 석가탑에 대해 감상평을 내놓는다. 최순우 박사는 석가탑과 다보탑이 보랏빛 아침햇살을 받는 뜰을 거닐면 그리운 사람의 얼굴이 생각난다고 했다. ‘나의 문화유적 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 박사는 ‘검이불루(儉而不陋)’란 말로 석가탑을 설명했다.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보탑은 ‘화려하되 사치해 보이지 않는 화이불치(華而不侈)’로 풀이했다.
국보 21호인 불국사 삼층석탑인 석가탑의 한가운데인 2층 옥개석이 1966년 이후 47년 만에 처음으로 수리를 위해 해체됐다. 이와 함께 석가탑에 안치됐던 사리와 사리보관함도 햇빛을 봤다. 앞으로 해체 과정에서 1300년동안 가려졌던 새로운 유물이 나올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전창협 디지털뉴스센터장/jljj@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