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그대로 진실되게 말하는 통계나 전망이야말로 경제정책을 펴는 출발점이다. 정권의 정책 명분을 만들기 위해 입맛에 따라 통계나 전망을 활용한다면 정부나 정책에 대한 국내외 신뢰도는 추락할 수밖에 없다.
언론중재위원회에 불려간 경험이 한 번 있다. 지난 2004년 말이다. 당시 노무현 정부의 기획예산처는 5년 단위의 중기재정운용계획을 처음 발표하면서 세입ㆍ세출 전망의 토대가 되는 실질성장률을 5%대로 예상했다. 그런데 본지는 중기재정의 실제 총수입 전망은 4% 후반의 성장률을 기초로 계산한 수치라고 보도했다. 조세연구원 등 관련 기관들이 3개월 전 모여 ‘2004~2008년’ 중기재정계획을 짤 때 성장률 전망은 보수적으로 4%대 후반으로 잡았는데, 발표 때 재정수입 예상규모는 편성 때와 같으면서 성장률 전망만 5%대로 높인 것을 확인했다. 민간연구기관에서는 잠재성장률이 4%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지만 정부는 정책의지를 강조하며 5%대를 고수하던 상황이었다. 기사가 나가자 기획예산처는 즉각 반박했다. 담당 당국자를 찾아가 취재 내용을 들이대니 미안하다고 했는데, 한 달여 뒤 기획예산처는 언론중재위에 이 기사에 대한 정정보도를 청구했다. 설전 끝에 결국 반론을 싣는 것으로 결론 났는데, 그 당국자는 두고두고 미안함을 표했다. 다음해인 2005년의 실질성장률은 4.0%였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달 말 첫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올 성장률 전망을 2.3%로 확 낮춘 것을 두고 말이 많다. 작년 9월 올 예산안을 편성할 때 세입ㆍ세출의 토대가 됐던 성장률 전망 4.0%에 비해 절반 가까이 낮고, 작년 말의 전망 수정치 3%에 비해서도 0.7%포인트나 내렸다.
이명박 전 정부에서 국책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던 현 정부의 경제 투톱 등 고위당국자들이 수개월 만에 경제 상황에 대한 인식을 확 바꾼 것이다.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라는 냉소성 비판이 일지만, 행태를 비난하는 것만으로 넘어가기에는 문제가 훨씬 심각하다. 정부 스스로 예산 편성의 기초가 되는 성장률 전망을 정치적 고려에 의해 ‘가감’했었음을 실토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발표하는 통계나 전망이 상황에 의해 언제든 수정될 수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이 말한 ‘현실을 그대로 진실되게 말하는 통계나 전망’이야말로 경제정책을 펴는 출발점이다. 성장률 전망치에 따라 세수 추정 규모가 수조원 달라진다.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이유 중 하나도 정부의 정책 의지에 휘둘리지 않고 국내총생산(GDP) 전망 등을 제대로 함으로써 금리 정책은 물론 정부의 재정정책에 지침을 주기 위해서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나 조세연구원 등 국책연구기관을 운용하는 목적도 정부 부처의 ‘심부름꾼’ 역할을 하라는 게 아니라 경제 석학들이 정책의 방향타를 조언하는 것이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처럼 경제 전망을 신뢰감 있게 내놓을 수 있는 기관이 확보돼야 경제주체들이 믿음을 갖는다.
정책 당국자들이 정권의 치적 쌓기나 정책 명분을 만들기 위해 입맛에 따라 통계나 전망을 활용한다면 정부나 정책에 대한 국내외 신뢰도는 추락할 수밖에 없다. 새 정부 경제팀은 아무런 외부 충격 요인이 없는데 6개월 만에 성장률 전망을 2.3%로 대폭 낮춘 근거부터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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