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를 애도하는 각국 지도자와 시민들 행렬이 봇물이다. 여성정치인의 편견과 한계를 극복하고 첫 여성 총리로 ‘강한 영국’의 기틀을 마련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자유시장 경제와 개인의 선택을 강조함으로써 영국 경제를 한 단계 발전시켰고, 강력한 외교정책으로 냉전종식에 기여했다”는 월스트리트저널의 평가는 고인의 업적을 압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반대 노선을 걸었던 토니 블레어 전 총리의 “영국을 바꾼 대처의 정책은 정권이 바뀌어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는 애도 발언도 눈에 띈다.
대처 전 총리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지만 가장 주목할 대목은 ‘법질서와 원칙’이다. 보수당 당수였던 그는 1979년 총선에서 법질서 회복을 내세워 승리하며 총리가 됐다. 이후 그는 법과 원칙에 바탕한 전면적인 사회 경제 개혁에 착수, 과도한 복지로 초래된 만성적인 ‘영국병’을 치유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 세력과의 정면충돌도 피하지 않았다. 1984년 전국적인 광산파업은 그 대표적 사례였다. 전국 174개 국영탄광 중 경제성이 없는 20곳을 폐업하자 모든 탄광노동자가 일제히 파업에 들어간 것이다. 석탄 생산 부족으로 국민 생활에 적지 않은 불편을 끼쳤지만 그는 결코 시장 경제의 원칙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노조는 9개월 만에 백기를 들었다. 탄광노조 사태를 계기로 대처의 복지제도 개혁은 급물살을 탔고, 추락하던 영국 경제는 다시 반석에 올랐다.
정치적 갈등에도 원칙에는 단호했다. 북아일랜드 독립을 주장하는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의 무장 저항에 대한 대응이 그랬다. 1981년 수감되어 있던 IRA 지도자 바비 샌즈는 66일간 단식투쟁을 벌였으며, 함께 참여한 9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하지만 당시 대처 총리는 “범죄는 범죄일 뿐 정치일 수 없다”며 IRA의 요구를 거부했다. 이 때문에 그는 암살 위협을 겪기도 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병’을 심하게 앓고 있다. 과도한 복지 요구에 나라 살림이 휘청이고, 법질서와 원칙의 훼손은 심각한 상태다. 덕수궁 앞을 점거한 채 1년 넘도록 불법 시위가 판을 쳐도 공권력이 제대도 대응하지 못하고, 서울시장이 되레 공권력을 비판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처의 강한 리더십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청와대가 요즘 대처 리더십을 탐구 중이라니 기대가 크다. 박근혜 대통령이 배워야 할 것 역시 ‘옷 입는 스타일’이 아니라 대처의 리더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