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검찰총장이 수사 사건의 처리 방향을 놓고 총장에게 결단을 의존하는 기존 관행을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검사장급 이상 간부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런 결심을 전하고 내부 통신망에도 올렸다. 어떠한 경우에도 일선 검찰의 수사에 총장은 개입하지 않겠다는 의지에 변함이 없음을 공개 천명한 셈이다. 이제부터는 정치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이라도 눈치보지 말고 소신껏 수사하고 구속기소부터 구형량 등 모든 결정을 스스로 하라는 지시다. 대신 그 결과에 대해서 엄중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하니 ‘책임 수사’ 정착도 기대된다. 이 같은 채 총장의 조치는 검찰 수사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겠다는 ‘검찰의 독립선언’으로 해석하기에 충분하다.
그동안 검찰총장은 일선 수사에 지나치게 관여했던 건 사실이다. 특히 권력 핵심 주변 인사와 친인척, 고위공직자, 정치권 인사 등이 연루된 사안은 기소 여부 단계부터 총장이 모두 결정했다. 대기업 관계자 등 사회적 파장이 큰 사안도 마찬가지였다. 총장이 이런 식으로 일선 수사에 개입하다보니 검찰의 공정성과 정치적 독립성을 훼손한다는 지적이 나왔던 것이다. 실제 전임 한상대 총장 시절 일부 재계 인사를 기소하면서 일선 수사팀 의견을 무시하고 임의로 구형량을 정했다는 의혹 때문에 한바탕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적어도 앞으로 이런 일은 없을 것이란 게 채 총장의 다짐이다. 그것만 해도 검찰 개혁이 크게 한 걸음 나아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 우리 검찰의 위상은 더 이상 추락할 데가 없을 정도로 벼랑 끝에 몰려있다.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에서 맡아놓은 꼴찌는 늘 검찰이다.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 ‘성추문 검사’ 등 불미스러운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환골탈태를 외쳤지만 매번 그때뿐이다. 검찰 개혁은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가장 화급하고 중차대한 과제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오죽하면 지난 대선에서 여야 후보 가릴 것 없이 들고 나온 이슈는 하나같이 검찰 개혁이었다.
물론 검찰 개혁의 요체는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 확보다. 중수부 폐지와 상설특검제 도입 등 다양한 개혁 방안도 이미 제시된 상태다. 하지만 검찰 스스로 뼈를 깎는 자기반성과 개혁의지가 없다면 어떠한 처방도 소용이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번 채 총장의 결단은 의미가 크다. 검찰의 힘은 권력으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번 조치를 계기로 ‘검사스러운 검사’가 아닌 ‘검사다운 검사’들의 조직체로 검찰이 거듭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