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동 대기자
경기침체 민간사업 붕괴 진행형원칙 휘둘린 정책이 위기 키워
공급자 중심 낡은 제도 탈피
미래 확신주는 틀부터 마련해야
건설업이 추풍낙엽 신세다. 추운 겨울을 넘기고 살아남은 업체 역시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해외 사업을 활발히 벌이는 등 겉으로 멀쩡한 듯 보이는 대형 건설사도 경영을 들여다보면 빛 좋은 개살구다. 수백억원씩 손실을 보는 게 대부분이다. 분식회계를 하지 않고는 존립이 힘들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물론 일감이 줄고 부동산경기가 침체된 게 주된 요인이다. 연간 40조~50조원대에 달했던 공공 발주공사가 크게 줄어들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동산 시장이 장기 침체되면서 민간사업이 급속 위축, 고사 직전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해외로 눈을 돌려 위기 탈출을 시도해봤으나 이 역시 저가경쟁 등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영욕의 세월을 뒤로한 채 대형업체가 쓰러져가는 탈각의 고통은 필연이다. 입낙찰을 비롯해 시공, 유지관리 등의 전과정이 비리와 부패로 얼룩진 전근대식 건설경영스타일 역시 산업 붕괴의 요인이다. 하지만 건설업 붕괴가 업체만의 책임일까.
30년 이상 건설현장을 지켜본 기자의 눈에는 정부 역시 중죄의 공범이다. 정권과 환경이 바뀔 때마다 건설제도와 정책의 혁신은 정부의 최우선 구호였다. 건설산업 선진화 전략 등 제도와 법제 혁신을 부르짖어 왔으나 공염불에 그쳤다. 이는 건설업자의 엉터리 논리에 이리저리 휘둘려 제도와 정책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춤을 춘데 따른 것이다. 원칙과 전략이 흔들린 정부의 미래전략 부재가 오늘의 현실을 초래했다는 얘기다. 담합이라는 그림자를 쫓기 위해 반복적으로 바꾼 입낙찰제도의 악순환을 비롯해 전문과 일반건설의 업역 간 마찰, 자유경쟁이라는 명분 아래 무분별하게 남발한 건설업 면허 등이 이를 잘 대변해준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분리발주 문제만 해도 그렇다. 새 정부의 130개 국정과제에 분리발주 문제가 포함되면서 전문과 일반건설업계의 힘 대결이 재차 가열되고 있다. 공사를 직접 수행하는 전문업체에 공사를 발주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보면 분리발주는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원도급자인 일반건설업체는 관리라는 명분으로 이익을 챙기고 덤핑 가격으로 하도급 대금을 지급한다는 관행의 척결이 절대 필요하다. 대기업 횡포을 원천적으로 막고 경제민주화 실현 차원에서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집 한 채를 짓는데 집주인이 터파기, 골조, 지붕, 창틀, 인테리어, 전기, 통신 등의 업체를 모두 불러 일개 공정씩 계약ㆍ수행토록 한다면 이해관계 상충과 불편 등이 극에 달할 게 뻔하다. 1건 공사에 수십건의 설계, 입낙찰, 계약 체결 등의 행정업무가 발생해 발주업무가 폭증하고 공기 증가로 인한 예산 낭비가 불가피하다.
미국 국립경제연구소는 분리발주 시 비용은 최대 8%, 공사기간은 배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공정 간의 간섭 역시 극심, 시공의 비효율성 초래는 물론 시설물 품질 저하도 우려된다. 하자 책임 여부가 불분명해 추후 소송 등 많은 불편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선진국에서도 전문공정별 분리발주를 지양하고 단일공사로 통합발주하는 추세다. 정상적인 하도급 대금을 제대로 받기 위해 분리발주를 도입한다는 것은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우는 꼴이다. 저가 하도급 대금은 투명한 대금 지급 규정으로 풀어야 한다. 보다 강력한 직불제 시행도 검토해봄 직하다.
시대는 바야흐로 수요자 맞춤형 제도 개선으로 진일보하고 있다. 낡은 공급자 중심형의 제도 틀을 하루빨리 바꾸고 미래로 향한 다리를 놓아야 한다. 해외에서 까다로운 기준을 준수하며 펄펄 나는 건설업체가 국내에서 빌빌대며 비리의 온상으로 비춰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건설산업의 새봄은 창조경제형 일자리 창출에 앞서 미래에 확신을 주는 제도의 틀을 마련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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