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 정상은 절반의 전환점이듯
인생 60세는 또다른 출발점
은퇴후 30년 어떻게 보낼지
지금 힘들어도 절실하게 준비를
히말라야산을 여러 번 정복한 산악인 허영호가 정상을 바로 100m 앞두고 올라갈 수는 있되 내려올 자신이 없는 절박한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의 체력은 이미 쇠잔했다. 눈 앞에는 로체살 봉우리가 나를 유혹하고 있다. 등반이라는 것이 오른 뒤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산의 정상은 겨우 목표의 절반에 위치한 반환점에 불과한 것을…. 오르는 길보다 더 어렵고 사고가 많은 게 하산길이다.”
허영호는 위대한 산악인이다. 당시로서는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도 정말 끊임없는 도전의식으로 에베레스트 3회 등정,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봉 등 많은 기록을 세운 세계적인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더욱 위대해 보이는 건 한없이 겸손하다는 것이다. 허영호는 산악 등반에서 정상에 오르는 건 목표의 절반 뿐이라는 것이다. 올라갈 생각만 하고 내려갈 준비를 하지 않으면 사고가 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말한다.
허영호는 마나슬로를 등반하고 느낀 소회를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정상에 서는 것은 절반의 목표를 이루었을 뿐이다. 오히려 정상에 오래 있을수록 불리한 조건에서 하산해야 한다. 나는 절반의 목표를 이뤘지만 나머지 절반을 잘 준비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기쁨에 도취해 정상에 오래 머물면 불리하다’는 허영호의 이 경구를 우리 인생에 대비하면 더욱 절실해진다.
우리는 100세 시대에 살고 있다. 100세가 아니어도 좋다. 90세라고 해보자. 태어나서 30년은 공부하고 직장 잡고 결혼하는 시기다. 인생에서 준비 기간이다. 그리고 본격적인 인생 60년이 남는다. 60년 생애에서 전반 30년에 사람들은 개개인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든 열정과 힘을 쏟아붓는다. 산의 정상으로 가는 과정과 같다. 그러나 절반인 나머지 30년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산으로 말하면 등정보다는 하산의 중요한 과정인데, 진지한 준비나 그 의미에 대한 고민이 없다. 과거처럼 평균수명이 짧았을 때는 그래도 됐다. 아둥바둥 고생했으니 잠시 쉬면서 여생을 보내면 최선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30년은 너무 길다. 하루하루가 힘든 사람도, 성공한 사람도 모두 남은 30년을 어떻게 보람되고 알차게 보낼 것인가 대비해야 한다. 허영호가 말하는 하산에 대한 절실한 준비처럼.
어느 95세 노인의 수기를 보자.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나는 실력을 인정받았고 존경도 받았습니다. 그 덕에 63세에 은퇴를 했고, 그 후엔 그저 덤이다 하고 살았습니다. 그저 그렇게 살면서 큰 병이나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그런 희망 없고 덧없는 삶을 30년이나 보냈습니다. 30년의 시간은 내 인생의 3분의 1입니다. 은퇴할 때 30년을 더 살 줄 알았으면 그리 살지는 않았을 겁니다.”
요즘 노인의 특징은 과거와 다르다. 젊었을 때의 돈이나 명예가 헛된 것임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바람직한 삶은 내면적인 만족이며, 과거에는 가족과 직장을 위해 살았지만 이제는 자신을 위해 살아도 이기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호주 어느 병원의 간호사가 말기암 환자를 대상으로 무엇이 가장 아쉬웠는지 조사했더니, 많은 사람이 남의 기대에 맞추거나 직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과 가족을 위해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답했단다.
인생의 절반인 30년을 준비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지금 살기도 벅찬데 웬 30년 준비냐고 핀잔을 줄지 모르지만 그럴수록 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돈을 벌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그리고 무엇이 되기 위해 살아왔다. 그럼 나머지 30년은 어떠해야 하는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앞으로 남은 생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보면 설혹 지금까지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해도 충분히 만회할 시간이 있다. 아직 절반 이상이나 남았으니 말이다.
<헤럴드경제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