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크론그룹 회장 이영규
“싸이는 ‘감’이 매우 발달해 있다” 한 언론사 기자는 세계적인 성공을 이룬 가수 싸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싸이는 자신의 음악에 노래와 춤뿐 아니라 예능ㆍ놀이와 같은 요소를 적절히 활용하면서 이를 환경과 분위기에 따라 어떻게 배분하고 끌고가야 할지 잘 알고 있다. 싸이의 성공요소라 할 수 있는 바로 이 ‘감’은 기업에서도 반드시 ‘잡아야 할’ 요소다.
필자가 처음 한 기업의 대표로 사업을 시작했을 당시에는 기술력과 함께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을 구사해 성공을 거둔 기업들이 다수 존재했다. 대표적으로 글로벌 가전업계의 대명사로 불리던 샤프는 액정분야에 집중해 큰 성공을 거둔 기업 중 하나다. 그러나 이 기업은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세계 최대규모의 LCD패널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차세대 성장산업으로 태양광 발전을 선택해 포트폴리오를 집중했지만, 이 사업들이 변화한 시장의 흐름을 놓치고 흔들리자 회사 전체가 위기에 빠진 것이다.
‘선택과 집중’은 여전히 훌륭한 경영전술임에는 틀림없지만, 이에 대한 지나친 맹종은 소비자와 시장에서 요구하는 다양성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거리패션의 변화에서만 봐도 알 수 있듯 소비자의 개성과 요구는 10년 전에 비해 훨씬 다양해졌고 시장은 시시각각 변화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미래학자들도 과거 100년의 변화보다 향후 10년의 변화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래를 예측하기가 어려워진 만큼 ‘급변하는 시장환경과 그로 인한 리스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는 기업경영에서 가장 고민되는 부분 중 하나다.
이병주의 저서 ‘촉,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는 동물적 감각’에 따르면, 격동하는 시장환경에서도 살아남는 기업들은 ‘촉’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책에서 촉은 “복잡하고 다양한 환경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인 동시에 빠른 변화를 직감하는 힘이며, 소비자의 진화하는 욕구를 감지해 변화에 대응하고 시장을 선도하는 능력”이라 정의한다.
필자가 거래하고 있는 기업 중 ‘3M’은 다양한 제품, 다양한 고객, 다양한 시장이라는 가치를 두고 경영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45개 주요 제품라인에서 사무용품부터 전기절연재료, 복사기, 스킨로션, X선 필름, 인체용 세라믹스까지 6만여종에 이르는 제품을 생산하고 있고, 매년 100여종 이상의 신제품을 출시한다. 시장과 소비자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다양한 사업군에서 뛰어난 품질, 혁신적인 기능을 가진 제품을 개발함으로써 시장변화에도 유연히 대처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싸이의 ‘감’, 경영자의 촉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필자의 경우 90년대 초반 극세사 섬유산업에 뛰어들었고 다양한 생활용품에서 기능성 침구, 산업용 필터에 이르기까지 지금과 같이 한 분야에서 인정받을 만큼 사업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성장동력을 찾고자 예지미인, 강원비앤이, 한텍엔지니어링과 같은 우수한 중견기업을 인수했고, 물ㆍ환경ㆍ에너지ㆍ건강을 키워드로 첨단소재사업, 해수담수플랜트, 신재생에너지, 바이오사업에 진출해 다양한 수익원 창출을 현실화 할 수 있었다. 소비자의 요구가 다양해지고 시장 유동성의 폭이 커진 만큼, 한 가지 사업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장 환경에 적합한 사업을 개발하거나 전망 있는 분야로 진출해 경쟁력을 확보하고자 한 전략이 적중한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의 평균수명은 10년 남짓이라고 한다. 그간 장수기업의 성공비결로 뛰어난 기술력을 꼽았다면, 앞으로는 차별화된 기술력을 갖추는 것은 물론 시장의 흐름과 변화에 ‘촉’을 세우고 빠르게 대처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언론은 일본의 대형 전자업체들이 줄줄이 위기에 봉착하는 것에 대해 “한쪽 다리에만 힘을 실었다가 상황 변화에 대한 순발력을 잃고 넘어지는 꼴”이라고 일컫는다. 과거의 성공에 얽매여 현 상황에 안주하는 일은 기업에게나 한 사람의 인생에서나 피해야 할 일임에 분명하다. ‘촉’과 ‘감’을 바짝 세우고 다양한 미래 먹거리를 찾는 것, 그것이 현시점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는 핵심방안의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