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찬 前국회의원
美테러·中지진에 묻힌 北 협박중국내 ‘북한=혈맹’ 언급 사라져
쓰촨성 지진 등 내부수습 총력
언론도 北核아귀다툼 여유 없어
보스턴 마라톤 테러사건이 터지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전례없는 강도로 “반드시 범인을 잡고 말겠다. 악랄하고 비겁한 테러 행위는 더이상 있어서는 안된다”고 세계인이 보는 TV 앞에서 테러 행위를 맹비난했다. 그리고 이틀 만에 범인을 밝혀내 조사 중이다. 분노에 찬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을 보면서, 또 48시간 만에 범인을 잡는 미국을 보면서 김정은과 그 추종자는 가슴이 서늘했으리라!
연일 군부대 시찰과 미사일 발사대를 세웠다 누였다 장난질해대던 북한은 이런 상황에서 과연 4차 핵실험을 할 수 있을까.
중국 쪽 사정을 봐도 마찬가지다. 쓰촨 성 지진으로 중국 언론은 더이상 중국 정부가 북한 핵문제로 아귀다툼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졌다고 보고 있고, 북한의 핵공갈을 지면에 할애할 수도 없는 지경이 돼버렸다. 3차 핵실험을 자제해달라는 새 지도자 시진핑의 친서를 12일 만에 백지로 만들고 핵실험을 강행해버린 북한을 더이상 봐주기도, 야단치기에도 여유가 없어 보인다.
이렇듯 엇박자가 나는데도 북한이 대화를 할 듯하다가 계속 한반도를 위협과 긴장 속으로 몰아가는 이유는 뭘까 생각해봤다.
많은 학자와 전문가는 이렇게 말을 모은다. 위기의 남북관계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미국과 중국의 서로 다른 시각 차이 때문이라고. 중국은 지금의 한반도 위기는 미국이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위기를 고조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반면, 미국은 북한에 대한 중국의 태도가 과거와는 확실히 달라지긴 했지만 아직도 미흡하다며 더 강력하게 북한을 압박할 것을 원하고 있다. 이렇게 한반도를 바라보는 미ㆍ중 간 시각이 다르기 때문에 한반도 상황이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1차적 책임은 끊임없이 호전적 태도를 보이는 북한인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다. 그것을 대전제로 하고 중국은 미국이 한반도 위기를 빌미로 과잉대응을 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이를테면 방어용 군사훈련이라지만 B52폭격기와 핵잠수함ㆍ스텔스기와 항공모함을 동원해 공격적인 군사훈련을 하고, 일본과 괌ㆍ동남아 등지의 군사력까지 총동원해 위기를 고조시켜 이곳 한반도의 장악력을 높이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반대로 미국은 중국이 더 강한 대북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 당장 북한으로 가는 송유관을 잠궈버리면 북한은 두 달을 버티지 못할 것이고, 북한의 군부관리용과 통치를 위한 비자금 등이 비치돼 있는 은행을 계좌추적을 통해 동결해버리면 될텐데 미적거리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ㆍ중의 시각 차이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한반도에는 중국의 변화로 어쩌면 건국이래 최고의 통일 기회가 올지 모른다. 그 이유는 중국인민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장쩌민, 후진타오시대를 끝으로 북한과 혈맹이라는 단어 사용을 자제하고 있다. 즉, 항미원조전쟁(6ㆍ25) 때 같이 피를 나눈 전쟁세대가 모두 물러나고 자기주장과 개성이 강한 컴퓨터세대가 중국사회를 이끌고 있다. 그들은 사사건건 사고만 치는 북한을 더이상 형제국으로 생각지 않는다. 북한이 하와이ㆍ괌 등을 타깃으로 한 미사일 위협을 가하자 미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괌을 비롯한 중국 인근에 미사일 방어망을 설치함으로써 오히려 중국을 어렵게 만든 것을 참지 못하고 연일 인터넷에 ‘돼지 삼부자’ 운운하며 글을 올리고 있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할 사건이다. 권위와 권력 그리고 무소불위의 공권력을 휘두르던 국가가 이제 인민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시진핑정부는 후진타오시대에서 해결하지 못한 빈부격차, 연안과 내륙지방 간 불균형에다 이제 북한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많은 젊은이와 인민을 달래야 하는 또 하나의 숙제까지 껴안아야 한다. 갈길 바쁜 중국, 자장면집에서 냉면 찾는 북한 때문에 오늘도 큰 한숨을 쉬는 모양이다.
구상찬 헤럴드경제 고문(전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