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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정덕상> 사다리를 놓는 경제민주화
복지와 증세, 고용확대, 비정규직, 장시간 근로 개선, 고령화 등 직면한 문제에 대기업의 역할은 어쩔 수 없는 시대흐름이다. 이 흐름을 타면서 정치 권력과 노동시장과의 대타협을 준비해야 한다.



미국 워싱턴DC 의회 뒤편에 있는 연방대법원 주변에선 요즘 하루 종일 동성결혼 지지자와 반대자들의 시위가 이어진다. 지지자들은 동성애의 상징인 무지개 깃발과 ‘우리의 결혼은 누구도 괴롭히지 않는다’는 피켓을 들고, 반대론자들은 ‘신은 아담과 이브를 만들었지, 아담과 스티브를 만들지 않았다’는 현수막을 내걸고 대치하고 있다. 미국의 동성애자는 약 400만명으로 성인 인구의 1.7%에 불과한데, 동성결혼 금지법의 위헌 여부를 결정하는 대법원 심리를 “역사적인 절차 돌입”이라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이런 이슈가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면, 아마도 “밥 먹고 할일 없나”라는 반응이 많을 것 같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에서도 소수(小數ㆍ마이너리티)를 대상으로 한 입법 전쟁이 뜨거운 사회논쟁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감몰아주기 금지, 부당한 하도급거래 금지 같은 경제민주화, 정년연장, 대체휴일 도입 같은 것들이다. 미국과 다른 점은 동성결혼자가 사회적 약자라면, 우리나라의 소수는 재벌이고 절대강자이며 이들을 보는 시선이 그리 따뜻하지 않다는 것이다. 국회가 법을 하나 내놓을 때마다 재계단체는 숨이 턱턱 막힐 만큼 어려운데, 정치권이 포퓰리즘 정책에 골몰한다고 반박성명을 낸다. 경제민주화를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던 박근혜 대통령도 국회의 속도 위반에 적지 않게 당황하는 기색이다. 복수전을 벌이는 듯 한 국회의 편가르기식 입법 행태는 분명 우려스러울 정도다.

그렇지만 법도 살아 있는 생물과 같다. 변화하고 진화한다. 사회의 거울이다. 여러 경제ㆍ사회제도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 논거로 제시하기에 충분한 여론조사가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에서 나왔다. 2040 젊은층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분배가 공정하지 않다’, ‘빈부격차가 심각하다’는 응답이 각각 93.4%, 93.5%였다. 빈부격차가 발생하는 원인은 자신이 게을러서(12.8%)보다는 ‘사회구조적 문제’(55.2%), ‘부모 잘못 만나서’(16.7%), ‘정책 잘못’(14%)이 대부분이었다. 시스템이 잘못 돌아간다는 생각이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노력해도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다(60.7%)고 하고, 노력해도 돌아오는 대가는 적으니(88.3%), 성장보다는 분배가 중요하다(66.3%)고 미래세대는 절망하고 있다.

세계 12위,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대기업집단의 기여는 지대하다. 그러나 몸집을 불리고 부를 상속하는 과정에서 불법과 편법이 동원된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감몰아주기로 기하급수적 부당이익을 올리고 단가를 후려쳐 하청업체의 사다리를 걷어차기도 했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게 자연법칙이다. 밥그릇 챙기기로 비쳐지고, 반기업정서를 불러올 공산도 크다.

나눠야 할 때 베풀지 않으면 빼앗긴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복지와 증세, 고용확대, 비정규직, 장시간 근로 개선, 고령화 등 직면한 문제에 대기업의 역할은 어쩔 수 없는 시대흐름이다. 이 흐름을 타면서 정치 권력과 노동 시장과의 대타협을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만 기업의 지배구조 등을 정정당당하게 요구할 수도 있고, 보장받을 수도 있다.

jpur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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