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게 조크쇼 하나 건의하는 게 ‘불경’인 것처럼 비춰지는 장면보다는 대통령이 자주 얼굴을 비추고 농담을 던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썰렁해도 좋다. 국민들은 그런 대통령의 모습을 기다린다.
“공화당 의원들과 식사를 하면서 내가 건배를 제안했는데, 그들은 상임위에서 건배 제안을 폐기하더군요.” 얼마전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출입 기자단 연례만찬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던진 농담이다. 백악관 출입기자단 연례만찬은 미국 정가에서 최대 사교 행사로 꼽힌다. 정ㆍ관ㆍ재계는 물론 연예인, 스포츠 스타 등 각계 유명 인사들이 모두 참석한다. 출입기자단 연례 만찬이 최대 사교 행사인 것도 재미있지만, 더 재미난 것은 참석자 모두가 ‘유머와 조크’를 뽐낸다는 점이다. 일종의 ‘조크쇼’인 셈이다. 미국엔 ‘그리다이언 클럽’ 연례 만찬이라는 것도 있다. 1886년 출범한 중견 언론인 모임인 그리다이언 클럽은 매년 대통령과 유명 정치인을 초청해 주요 정치 현안에 대해 조크ㆍ풍자 솜씨를 뽐내게 하는 형식의 만찬을 진행한다고 한다.
정치는 권력을 잡기 위한 행위다. 권력은 투쟁과 쟁취의 산물이기도 하다. 반(反)을 통해 합(合)을 이뤄내는 게 정치인 셈이다. 하지만 정치라고 해도 마냥 서로가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는 긴장관계를 계속해서 가져갈 수만은 없다. 계속 힘을 주면 두꺼운 나무토막도 부러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정치엔 이완제가 필요하다. 미국이 정쟁의 와중에도 매년 ‘조크쇼’를 갖는 것도 허리띠를 한 번 풀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조크쇼는 일종의 탈출구인 셈이다.
얼마전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사석에서 “우리도 청와대에서 출입기자단 만찬을 조크쇼로 벌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싶은데…”라는 말을 무심코 던졌다. “대통령께 한 번 건의해 보시죠”라는 농담 반 진담 반 대꾸에 그는 “내 소관 업무도 아니고 해서…”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박근혜 대통령도 최근 식사정치를 하면서 농담을 던지곤 했다. “코에 뾰루지가 낫다. 아마도 여러분이 그리워서 상사병이 걸린 것 같다” 등등 인터넷엔 박 대통령의 ‘썰렁한 유머’ 시리즈가 화제가 되곤 했다. 하지만 그뿐이다. 박 대통령은 계속되는 식사정치에 온 신경을 쓴 탓인지 한 때 체해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적도 있다고 한다.
‘돌아온 무대’ 김무성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느 뉴스를 보니 (박 대통령이) 저녁을 혼자 드신다고 하더라. 대통령을 외롭게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는 뼈 있는 말을 던졌다. 숙명적으로 대통령은 외롭다. 고뇌의 결단을 해야 하는 것도 모두 대통령의 몫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외롭다는 느낌을 국민들이 갖는 순간, 정치는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 그래서 소통이 부족하다는 말도 나온다.
미국에서처럼 ‘조크쇼’가 아니어도 좋다. 시간이 좀 걸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들과, 정치인들과, 기자들과 자주 만나고, 이 자리에서 정국현안에 대해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만은 보고 싶다. 대통령에게 조크쇼 하나 건의하는 게 ‘불경’인 것처럼 비춰지는 장면보다는 대통령이 자주 얼굴을 비추고 농담을 던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게 박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하는 ‘원칙과 신뢰’이미지를 훼손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국민에게 한결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게 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썰렁해도 좋다. 국민들은 그런 대통령의 모습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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