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기 의혹 파문이 출판업계를 강타하고 있다. 소설가 황석영 씨의 ‘여울물소리’를 비롯해 김연수 백영옥 씨의 작품이 출판사 ‘자음과 모음’의 ‘사재기 수법’으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의혹을 일부 언론에서 제기한 게 그 발단이다. 사건이 불거지자 황석영 씨는 “나의 문학 인생 전체를 모독하는 일”이라며 해당 작품에 대해 ‘절판’을 선언했다. 절판은 어떠한 경우에도 이 책을 유통시키지 않겠다는 것으로 작품에 대한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함께 의혹에 휘말린 다른 작가들도 “사재기를 할 이유가 없다”며 같은 반응이다. 실제 교보문고를 비롯한 서점가는 하루 만에 해당 책을 전부 진열대에서 내리는 소동이 벌어졌고, 예스24 알라딘 등 인터넷 서점도 거래를 중지한 상태다.
그동안 사재기 등 출판업계의 그릇된 유통에 대한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까지 이런 부정한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충격적이다. 이번 파문에 연루된 김연수 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개인적으로 무척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어렵게 쓴 소설”이라며 참담한 심경의 일단을 피력하기도 했다. 작가들에게 작품은 자식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작품을 스스로 절판하는 마음은 오죽하겠는가.
사건의 중심에 선 자음과 모음은 회사 대표가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또 회사 비상대책위원회는 독자와 국민에게 사과와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등 파문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그런 정도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하긴 이 회사뿐이겠는가. 훨씬 더 교묘하고 치밀하게 사재기를 해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출판사도 적지 않을 것이다. 두 말할 것 없이 이번 기회에 출판업계의 고질병인 잘못된 유통 관행을 깨끗이 뿌리 뽑아야 한다. 사재기는 독자를 기만하고 출판시장을 교란하며, 작가들의 자존심을 짓밟는 범죄행위다.
우선은 미약한 처벌 규정의 강화가 시급해 보인다. 지금은 사재기를 하다 적발되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리는 게 고작이다. 이런 허술한 법적 제재로는 근절이 어렵다. 이를 벌금형으로 높이고 액수도 대폭 올려야 한다. 대형 서점 중심의 베스트셀러 집계 방식 개선과 ‘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의 기능과 역할도 보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출판인들의 의식 전환이다. 이런 식으로 제살을 깎아 먹는 것은 결국 공멸에 이르는 지름길일 뿐이다. 아울러 출판업계에 대한 정부 지원을 획기적으로 확대하기 바란다. ‘문화융성’은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3대 국정목표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