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2시30분 영등포 우리시장 입구. 왼손에 아이(4세)의 손을 잡은 40대 주부 A 씨는 초조했다. 초여름 더위가 만만치 않다 보니 입에선 ‘언제 오나’ 소리가 맴돌았다. A 씨가 기다리는 사람은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허 회장은 이날 재래시장인 우리시장을 방문했다. A 씨의 역할은 ‘준비된(?) 손님’
3시께 허 회장이 도착해 가게 상인으로부터 ‘요새 어려움’을 들은 뒤, 본격적인 장사에 나섰다. A 씨가 등장할 차례. 전경련 직원들이 A 씨를 찾아 허 회장 앞으로 모셨다. ‘아이가 내 손주와 닮았다’는 덕담이 오갔고, 검은 봉지에는 참외와 방울토마토 등이 담겼다. 1만5000원을 내고 2000원은 거슬러 받았다. A 씨는 전경련 직원으로부터 ‘이제 가셔도 된다’는 얘기를 들을 때까지 한 시간가량 행사를 쫓아다녀야 했다. 다음날 언론에 보도된 사진엔 ‘전경련이 전통시장 살리기에 나섰다’는 제목이 붙었다.
이날 하루 모두 8곳의 재래시장에서 전경련 전 직원들이 일제히 일일 상인으로 분해 물건을 팔았다. 이날 전경련 직원들이 판 물건은 시세보다 꽤 낮은 값에 팔렸는데, 이에 따른 상인들의 손실분은 전경련이 이후 현금으로 보전해줬고 한다.
전경련이 처음으로 전 임직원을 동원해 전통시장 일일판매에 나섰지만, 여론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전경련이 지난 3월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보면 설문응답자 74.3%가 대형마트에서의 판매물품 제한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를 우려했다. 대형마트 판매물품 제한이 곧 전통시장 활성화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결론이다. 대형마트는 전경련 회원사다.
전경련의 ‘전통시장 살리기’ 행사에 재를 뿌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전 임직원을 동원한 것 역시 전경련이 특정사의 이익을 대변하던 모습으로부터 탈피하려는 시도로 해석하고 싶다. 다만 이번 행사가 국회를 중심으로 추진 중인 ‘경제민주화 입법’을 의식한 보여주기 식의 일회성 행사가 아니길 바란다. 또 공감없이 급히 만든 행사의 부작용인 ‘준비된 손님’ 등 ‘플랜 비(B)’도 다음부터는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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